대형마트의 초저가 와인 경쟁을 보며 느낀 점 

 

최근 들어, 한국 사회, 혼술의 풍경이 묘하게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나의 경우, 언제부턴가 네 캔에 대략 만원 정도 하는 맥주를 구매하지 않고 있다. 맥주의 자리를 대신한 것은 다름 아닌 와인. 출발점은 이마트에서 4,900원에 출시된 도스코파스였던 것 같다. 와인에 대해 잘 모르지만, 저렴한 가격에 호기심이 생겨 구입한 도스코파스 레드블렌드(도스코파스의 경우 카베르네 소비뇽보다 레드블렌드가 입맛에 맞았다)는 생각보다 꽤 괜찮았다. 자연스럽게 맥주 대신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다. 이제, 퇴근 후 맥주 한 캔에서, 퇴근 후 와인 한 잔으로 혼술의 풍경이 바뀐 것이다.

 

 

 

맥주가 와인으로 바뀐다는 건, 단순히 술만 바뀌는 게 아니었다. 우선 안주의 변화가 눈에 띈다. 맥주와 함께 했던 치킨의 주문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대신, 감바스를 만들 바게트와 새우를 많이 구입하고 있다. 감바스는 만들기도 쉽거니와 어떤 와인과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더구나 조리 시간이 십 분이면 충분하다. 올리브 오일, 채 썬 마늘, 새우, 페퍼론치노 이렇게 네 가지 재료를 볶아주기만 하면 대략 완성. 안주의 풍경이 그렇게 치킨에서 새우로 바뀌었다. 사실, 안주는 시작에 불과했다. 어느새, 두텁고 투박했던 맥주잔은 유려한 곡선의 와인글라스로 바뀌었고, 오래전 선물로 받았지만, 서랍 속에서 고이 잠만 자던 알레시 와인 오프너가 식탁 위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뭐, 이 정도면 ‘혼술의 풍경’이 바뀌었다고 하는 게 그리 과장된 표현은 아닌 것 같다.

 

 

발레하는 오프너

 

 

대형마트 주류 매출 1위로 올라선 와인

 

혼술의 새로운 풍경에 와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게,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닌 것 같다. 뉴스를 보니 올해 주요 대형마트 주류 판매 순위에서, 와인이 매년 1,2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던 국산 맥주와 수입맥주를 제치고 당당히 1위 자리에 올랐다.

 

이마트는 올 들어 12월 19일까지 주류 매출을 결산한 결과, 와인이 처음으로 국산 맥주와 수입맥주를 제치고 주류 카테고리 안에서 가장 매출 비중이 높았다고 22일 밝혔다. 올해 이마트 주류 카테고리의 와인 매출 비중은 23.3%로 국산 맥주(22.2%)와 수입맥주(21.6%)를 근소한 차이로 앞질렀다. <출처 : 한겨레 기사>

 

상황이 이렇다 보니, 롯데마트에서도 최근 이마트 4,900원 와인보다 100원 더 싼 4,800원 와인을 출시하면서 맞불을 놓고 있다. 롯데마트뿐만이 아니다. 홈플러스 등 다른 대형 마트와 편의점들도 와인 코너에 점점 더 무게를 두면서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 아시아경제

 

 

대형마트는 왜 와인에 승부를 걸고 있나

 

와인이 주류 매출 1위를 차지한 데에는 아무래도 유통업체들의 ‘와인 가격 경쟁’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듯 싶다.

 

 

유통업체들의 ‘와인 가격 경쟁’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여, 와인 소비는 내년에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대형마트는 오프라인 매장이 부진하자 온라인 쇼핑으로는 살 수 없는 와인을 미끼로 활용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이마트는 지난 8월 4900원(750㎖) 짜리 칠레산 와인 ‘도스코파스’를 내놨고, 최근 롯데마트도 1병(750㎖)에 4800원짜리 칠레산 ‘나투아 와인’ 2종을 선보이며 맞불을 놨다. 편의점도 가세해, 지에스(GS)25·씨유(CU)·이마트24는 각각 와인 예약 서비스와 와인 할인 판매, 와인 구매 전용 멤버십 등을 진행하고 있다. <출처 : 한겨레 기사>

 

결국, 대형마트들이 가격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와인을 파격적으로 밀었던 게, ‘음주의 풍경’에 변화를 가져올 만큼 상당한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대형마트는 왜 이렇게 와인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것일까? 위에 인용한 기사에서는, 그 이유를 ‘미끼상품’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좀 더 간략하게 그 이유를 정리해 보자면…

 

1. 쿠팡과 마켓컬리에서 술은 살 수 없다.
2. 와인은 소주, 맥주와 달리 동네마트 혹은 편의점에서 구매가 일반적이지 않다.
3. 일단 찾아오게 하면 지갑을 연다.(대형마트는 객단가가 높다.)

 

 

이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결국 핵심은 쿠팡과 같은 온라인, 편의점과 같은 오프라인 경쟁자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전략 상품으로 와인을 선택한 모양새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강력한 온오프라인 경쟁자들 앞에서 와인으로 차별화를 선택한 대형마트의 이런 전략은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었을까? 일단, 식료품 구매 트렌드 자료를 보면 와인에 대한 이런 대형 마트의 전략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출처: 오픈서베

 

오픈서베이 자료를 보면 확실히, 대형마트는 소비자들의 월평균 방문 횟수가 6.6회로 가장 낮지만, 1회 구매 시 소비금액은 압도적으로 크다. 일단 찾아오게 하면 지갑을 연다는 표현이 유독 대형마트에 어울리는 이유다. 사실, 일단 찾아오게 하면 지갑을 연다는 표현은, 호텔 같은 관광업에서 많이 사용되는 표현인데, 대형마트에도 비교적 잘 적용이 되는 것 같다.

 

 

 

자료 중에 재미있는 부분은, 2인 가구가 3인 가구보다 대형마트에서 돈을 많이 쓰고 상대적으로 온/모바일로는 돈을 적게 쓰는 부분이었다. 3인 가구의 경우 분유나 기저귀 같은 육아 용품을 사는데 온/모바일을 많이 이용해서라고 일반적으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2인 가구가 대형마트에서 3인 가구보다 많은 돈을 쓰고 있는 부분은 다소 의외였다.

어쨌든, 2인 가구와 3인 가구 그리고 그 외의 모든 종류의 가구들이 대형마트를 찾는데, 과연 와인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어쩌면 와인은 강력한 경쟁자들의 출현 앞에서 돌파구를 찾는 대형마트의 여러 몸부림 가운데 하나일 수도 있겠다. 대형마트는 와인에 이어, 또 어떤 돌파구들을 만들고 시도할지 여러모로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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