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에서 배운 것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오늘은 짧았던 내 첫 직장에서의 경험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대학 생활 내내 공무원 / 준공무원 준비를 하던 나는 2013년, 취업의 ‘ㅊ’도 모른 채로 스물다섯에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어떤 기업에 가서 어떤 경험을 하고 싶은지 전혀 생각이 없었다. 국내 대기업 공채 소식을 몇 번 둘러보다가 우연히 해외 취업 기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글로벌’이라는 키워드에 꽂혀있던 나는 일본어 실력을 살려 일본에서 첫 취업을 해보자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당시 일본 취업을 포함한 해외 취업에 대한 정보가 많지는 않았지만 포털 검색, 학교 경력개발센터 정보 등을 종합하여 6-7월 즈음부터 열심히 취업설명회와 박람회에 다녔던 기억이 있다. 한창 취업 활동을 하다가 가을에 3곳으로부터 최종 합격 통지를 받았는데, 그중 방송사의 일이 가장 재미있어 보여서 케이블 방송사 입사를 결심했었다.

케이블 방송사에서는 추후 내게 한일 간 콘텐츠 수출입에 대한 일을 맡길 예정이었다고 하는데, 우선 첫 1-3년은 다른 직원들과 같이 영업 / 고객센터 중 한 곳에서 기본적인 업무를 익혀야 했었다. 둘 중 굳이 따지자면 영업을 더 하고 싶었으나, 직무 배정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외국인이니 영업보다는 고객센터에서의 일이 더 수월할 것이다’는 인사과의 배려로 도쿄 근교의 고객센터에 배정이 되었다.

 

 

 

 

 

2014년 봄 연수가 끝나고 근무처를 발령받았을 때에는 그리 기쁘지 않았지만, 우연히 배정된 이곳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직무가 아닌 기업문화 등 다른 이유로 첫 직장을 6개월 만에 그만두었는데, 비록 짧게 다니긴 했지만 이곳에서 고객 응대의 기본을 배울 수 있었고 이는 추후 내가 영업을 하는 데 있어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그중 도움이 될만한 몇 가지를 여러분에게 소개한다.

 

 

고객을 대하는 마음가짐


센터에서 내가 배운 것은 ‘고객은 수화기 너머로 나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고객 응대 시, 내가 보이지 않더라도 고객이 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표정과 몸짓을 동반하라는 교육을 받았었다. 이에 따라 전화를 받을 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며 받고, 고객에게 사과를 할 일이 있다면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했었다. 책상에 앉아서 모니터를 보며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표정과 몸짓을 동반하니 조금 더 진실성 있게 고객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지금은 숙련(?)이 되어서 액션을 크게 하지는 않지만, 고객과 대화 / 통화 시 항상 그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있다는 인상을 주려고 노력한다.

 

 

기분 좋은 톤


또한 고객 통화 시 평소 톤보다 두 톤을 높여 받으라고 교육받았었다. 평소에 ‘미’ 톤이라면 ‘솔’ 톤까지 올려서 받는 것인데, 이를 ‘기분 좋은 톤’이라 부른다. 너무 오버해서 목소리를 올릴 필요는 없지만, 이를 숙지하고 통화를 하면 항상 친절한 톤을 유지할 수 있다. 고객이 컴플레인을 하지 않는 일반 응대 시 가끔 뒤에 웃음을 붙이라는 조언도 있었는데, 경험 상 너무 억지스럽지 않을 정도로 붙여주면 듣는 이도 기분이 편안해지는 것 같다.

 

 

매뉴얼


일본의 고객센터에는 거의 모든 상황에 대한 매뉴얼이 있다. (역시 매뉴얼의 나라) 따라서 웬만한 상황에 대해선 신입 사원이라도 대처가 가능하다. 그렇다면 매뉴얼에 없는 문의를 받았을 때에는 어떻게 할까? 이 또한 매뉴얼에 있는데, 고객에게 잠시 기다려달라고 하고 답변을 찾으면 된다. 답변을 찾는 데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으면 시간이 걸리는데 상황을 살펴보고 콜백을 주겠다고 하면 된다.

고객이 어떤 질문을 해왔을 때 내가 답을 모른다면 바로 대답할 필요가 없다. 알아보고 답을 드리면 된다.
주니어들과 고객 미팅을 갔을 때, 고객이 모르는 질문을 해오면 당황하는 모습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이럴 때는 예를 들어 ‘기술적인 부분은 추가 확인이 필요하여, 내부에서 알아보고 내일까지 메일로 정리하여 답을 드리겠다’라고 하면 된다. 당황하지 말자.

 

 

사과, 그리고 경청


고객센터에서 가장 많이 받는 문의는 뭘까? 바로 컴플레인이다. 하루에도 상담원 한 명 당 수십 건, 비용 청구가 잘 못되었으니 상세 내역을 설명 해달 라거나, 해지가 제대로 안 돼서 요금이 청구되었거나, 기기가 작동을 안 한다거나.. 정말 다양한 컴플레인 또는 불편 사례들이 접수된다.

고객이 어떠한 이유로라도 불편을 느끼거나 화가 났다면, 우선 사과를 해야 한다. 그리고 들어라. 그리고 상급자가 필요할 때는 상급자를 활용하라. 화가 난 고객에게 사과 없이 이성적인 답변을 늘어놓게 되면 응대 시간도 길어지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스타트업에서 영업을 할 때 한 매장 사장님이 우리 서비스로 인해 본인 매장의 기기가 작동하지 않는다며 컴플레인 전화를 넣은 적이 있다.’

 

실상 우리 서비스의 문제는 아니었지만, 다짜고짜 내게 전화를 해서 몇 시간 동안 기기가 작동하지 않아 본인이 손님들에게 욕을 먹고 사과를 했어야 했다며, 물질적/정신적 손해배상으로 수천만 원을 청구하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한 적이 있다.


그 사장님은 실제로 수천만 원을 청구하고자 하던 게 아니었다. 본인이 받은 스트레스를 어딘가에 풀고 싶었고, 전화를 받지 않는 타 업체의 영업사원 대신 내게 화살이 튄 것 같았다. 매우 화가 나있던 사장님은 내가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하다며 사과를 하고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계속 듣자 30분 정도 후 화가 누그러졌고, 그의 화가 누그러진 후에야 우리 서비스의 문제가 아니라 기기 자체를 살펴보셔야 한다는 해결책을 드리며 통화를 종료할 수 있었다. 물론 이후 사장님은 내게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았다.

정말 기본적이지만 이런 사항들은 내가 영업을 할 때 콜드 콜, 고객 응대, 중간중간 팔로업부터 클로징까지 도움이 되었다.

고객으로부터 근 6-7년간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친절하다’는 것인데,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되지만 아무리 좋지 않은 상황의 전화라도 친절한 톤으로, 침착히 들으며 고객의 요구사항을 맞춰주려 하다 보니 생긴 인상인 것 같다.

 


이 세상에 쓸데없는 경험은 없다.

 

다 나중에 쓰이니 오늘을 잘 살자.

 


P.S. 서비스 직종의 모든 분들, 수화기 뒤의 모든 분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해당 콘텐츠는 배준현님과 모비인사이드의 파트너쉽으로 제공되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