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6일, 이베이코리아 인수 예비 입찰이 마감되었습니다. 사실 올초 처음 이베이코리아 매각 이야기가 나왔을 때만 해도, 대부분 부정적인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갑자기 급변하면서 인수전은 갑자기 뜻밖의 흥행을 일으키기 시작했는데요. 특히 카카오의 참전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장의 기대는 말 그대로 정점을 찍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카카오는 입찰을 막판에 포기하였고요. 갑자기 SKT가 새로이 껴들면서, 이베이 인수전은 이제 신세계, 롯데, MBK, SKT의 4파전으로 치러질 전망입니다.

 그렇다면, 모두가 부정적이던 이베이코리아 인수 갑자기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리고 카카오는 도대체 왜 막판에 발을 뺀 것일까요? 오늘 데이터로 파헤쳐 볼 대상은 이베이 코리아 인수전입니다.

 

1. 이베이 인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이베이 코리아는 한 때 정말 잘 나갔던 이커머스 회사입니다. 우리나라의 온라인 쇼핑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롯데닷컴과 옥션이 나옵니다. 초기 시장을 선도하던 옥션을 미국의 이베이가 인수를 하였고요. 오픈마켓 시장의 패권을 노리고 인터파크가 G마켓을 론칭하여 시장에 진입합니다. 그럼 둘은 치열하게 싸웠을까요? 아닙니다. 무의미한 출혈 경쟁을 막기 위해, 이베이는 경쟁사 G마켓을 전격 인수하는데요. 이때부터 한국 이커머스 시장은 오랜 기간 이베이 코리아가 주도하게 됩니다.

 당시 이베이 코리아의 파워는 정말 어마어마했는데요. 4-5년 전만 해도, 오픈마켓 내 점유율은 70%에 가까웠고요. 전체 온라인 쇼핑 내 추정 점유율도 20% 이상이었습니다. 압도적인 1등이었지요. 물론 경쟁사도 있긴 했습니다. 11번가는 SK라는 대기업의 자본력을 뒤에 업고, 무섭게 치고 들어왔고요. 소셜커머스 3형제라 불리던 쿠팡, 위메프, 티몬이라는 무서운 신인들도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마치 스마트폰 시대 이전의 노키아처럼 이베이 코리아의 앞날을 걱정하던 이들은 드물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말합니다. 그때 이베이가 매물로 나왔다면 아마 엄청 경쟁이 치열했을 거라고요.

 하지만 불과 2-3년 사이에 세상이 바뀝니다. 이커머스 시장은 네이버와 쿠팡의 양강 구도로 재편이 되었고요. 이베이 코리아는 추정 점유율 12%인 시장 3위 사업자로 내려앉습니다. 여기에는 미국 본사의 위기를 핑계로 현금만 쏙쏙 빼가고 투자는 게을리한 이베이도 한몫했습니다. 그래서 사실 올초 다시금 이베이 코리아 매각설이 터졌을 때 시장 반응은 상당히 부정적이었습니다. 특히나 5조 원이라는 희망가도 과하다는 평이 많았죠.

 하지만 늘 상황은 변하는 법. 이번에는 경쟁사 쿠팡이 미국에서 상장으로 대박을 내면서 이베이를 향한 시선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지금은 80조 원대까지 빠지긴 했지만, 상장 직후 쿠팡의 기업가치는 한때 100조 원을 넘나들었고요. 이 덕택에 5조 원 가까운 실탄을 손에 쥐면서 쿠팡은 파산 위기에서 확실히 벗어납니다. 그리고 이러한 쿠팡의 선전은 이베이 인수전에 불을 붙이게 됩니다. 

 다만 우리는 여기서 착각하면 안 됩니다. 쿠팡의 가치가 생각보다 크다고 인정받으니 이베이의 책정 가격 5조 원이 갑자기 합리적이라고 느껴진 건 아닙니다. 쿠팡의 기업가치는 쿠팡이 경쟁사들을 압도하고, 최소한 아마존처럼 한국 이커머스 시장 내 지배력을 가지게 될 거라는 기대에서 나온 겁니다. 즉 쿠팡의 높은 기업 가치는 그 자체로 쿠팡의 경쟁자들이 경쟁력을 잃었음을 의미한다는 거죠.

 그리고, 이러한 포인트에서 역설적으로 이베이 코리아의 가치는 올라가게 됩니다. 우선 예비 입찰에 참여한 4개 기업의 면모를 살펴봐 볼까요? 우선 롯데, 신세계는 아시다시피 유통 기업입니다. SKT는 11번가라는 시장 4위 플랫폼을 가지고 있고요. 마지막으로 MBK는 홈플러스라는 대형마트를 포트폴리오로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이들은 모두 쿠팡의 비상으로 제 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이들이 이베이 인수전에 기웃거리는 이유는 도약을 위한 전략적 선택보다는 생존을 위한 고육지책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이러니하게도 높은 성장성을 보이며, 쿠팡의 경쟁자라 불리는 네이버와 카카오는 또 쏙 빠졌다는 게 재미있지 않나요? 

 

2. 이베이가 5조 원이라는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이유는?

 그렇다면, 이베이 코리아는 적어도 생존을 위한 탈출 수단 정도의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는 매물일까요? 물론 5조 원이라는 가격 자체는 만만치 않은 게 사실입니다. 오프라인 채널 중 가장 큰 덩치를 자랑하는 이마트의 시가총액과 비슷한 수준이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경쟁에서 아예 탈락할 위기에 처한 플레이어들에게는 매력적인 선택지는 될 것 같습니다.

 

 

 우선 이베이 코리아는 흑자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니 기업이 돈 버는 게 당연하지, 뭐 그리 대단하냐고요? 사실 조 단위 이상의 거래액을 일으키는 이커머스 플랫폼 중 돈을 버는 곳은 정말 손에 꼽습니다. 그리고 그 규모의 기준을 5조 원 혹은 10조 원 이상으로 올리면 사실상 이베이가 유일합니다.

 

이베이 코리아의 수익구조는 정말 모두가 부러워하곤 하죠 (출처: 전자공시시스템)

 

 이러한 이베이 코리아의 흑자는 어디서 나올까요? 바로 오픈마켓이라는 사업구조가 이베이 코리아의 비결입니다. 보시면 2018년 연간 실적 기준으로 이베이 코리아의 매출액은 1조 원 가까이 되고, 매출원가는 그 절반 수준이잖아요. 여기에서 4,500억 원 정도의 매출 총이익을 얻으면, 판관비 4천 억 원을 빼면 약 500억 원의 영업이익이 남긴다는 건데요. (참고로 이베이코리아는 2019년 말에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하여 19년 이후 실적은 공시를 통해 공개하고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 매출 총이익이란 물건 하나를 팔았을 때 원가를 제외하고 남는 돈을 의미하는데요. 이거 제조기업도 아닌 유통기업이 물건 떼다 팔면서 절반을 남긴다니 얼핏 보면 정말 악덕기업이지요? 하지만 오픈마켓의 성격을 정확하게 알게 되시면 이런 구조를 이해하시게 될 겁니다. 오픈마켓은 물건을 직접 구입해서 파는 것이 아니라, 단지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서 중개만 하고 수수료만 받는 역할을 의미하거든요. 따라서 이베이 코리아의 매출은 거의 100% 중개 수수료고요. 원가 역시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상품의 도매 구입가가 아니라, 결제 수수료, 사이트 서버 비용 등이 되는 거랍니다. 여기서 상당수는 거래가 일어날 때마다 같이 증가하는 변동비가 아니라, 일정 액수가 유지되는 고정비적인 성격을 가지고요. 그렇기에 일단 10조 원 이상의 거래액 규모를 가장 먼저 만든 이베이 코리아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여 영업이익이 나는 구조를 만들 수 있었던 겁니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쿠팡을 비롯하여 위메프, 티몬, 롯데 등이 앞다투어 오픈마켓으로 전환한 것이고요.

 이처럼 매년 500~1,000억 사이의 영업이익은 안정적으로 만들어 내는 이베이 코리아, 솔직히 5조 원이라는 한번 지를 때 큰돈이 부담되긴 하지만, 일단 사기만 하면 최소한 돈을 잃을 걱정은 없다는 거죠. 여기에 내가 운영하는 쇼핑몰도 이베이와 함께라면 규모의 경제 구현을 통한 흑자 전환이 가능하다는 점도 큰 메리트지요. (사실 단순 점유율로 시장 내 순위가 올라가는 것보단 흑자전환이 가능한 볼륨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포인트인 거죠) 쿠팡을 경계하는 타 회사들이 가장 부담으로 느끼는 게 적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베팅할만한 판이지 않을까요?

 더욱이 이베이는 충성 고객과 온라인에 잔뼈가 굵은 뛰어난 인력 파워까지 보유하고 있습니다. 일단 스마일클럽이라는 유료 멤버십을 업계 최초로 론칭하여 운영 중이고요. 여기에 더해 현대카드와 협업하여 만든 PLCC카드인 스마일 카드도 가지고 있습니다. 숫자는 얼마나 되냐고요? 유료 회원 수는 무려 300만 명이고요, 카드도 100만 장이나 발급되었다고 하니 탐낼 만하지요.

 여기에 더해 직원 생산성 역시 자랑거리인데요. 이베이의 직원 1명당 거래액은 200억 원 수준으로, 11번가(92억 원), 위메프(41억 원)와 비교하면 정말 압도적인 수준입니다. 그만큼 일하는 프로세스가 잘 정리되었다는 건데요. 매년 11월마다 진행하는 빅스마일데이만 해도 업계를 대표하는 행사 중 하나이고요. 인스타그램 방탈출 이벤트 등 새롭고 신선한 마케팅 이벤트 등으로 소문난 우수한 인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이베이 코리아를 인수할 때의 장점은 아래와 같겠네요.

  1.   이베이 코리아는 매년 500억 ~ 1,000억 사이의 영업이익은 안정적으로 만들어 낸다.                   (수익을 내기 위한 거래액 볼륨을 한 번에 확보 가능하다)
  2.   스마일클럽 회원 수 300만 명, 스마일 카드 발급 수 100만 장 등 충성고객 층이 두텁다.
  3.   직원 1명당 거래액이 200억 정도로 업계 최고 수준이다.

 따라서, 아직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만한 거래액을 확보 못했거나, 시장 내 존재감이 희미하고 플랫폼 충성도가 낮은 경우, 혹은 온라인 인력이나 전문성이 부족한 경우에 이베이는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습니다.

 

3. 그렇다면 왜 카카오에게는 매력적이지 않은가?

 지금까지 이베이가 인수 대상으로써 매력적인 포인트들을 알아봤는데요. 그러면 도대체 왜 잘 나가는 네이버와 카카오는 여기에 관심이 없는 걸까요? 특히나 카카오는 실무진에서는 추진해보기를 원했는데, 김범수 의장이 NO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판단이 매우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이베이가 가진 장점은 대부분 네이버와 쿠팡의 하위 호환이라는 점입니다. 일단 거래액 볼륨은 업계 1, 2위인 네이버와 쿠팡이 더 크고요. 최근 3,4년간 심지어 이베이의 거래액은 1조 박스권 안에 갇혀 있습니다. 유료 멤버십은 어떠냐고요? 네이버와 쿠팡 둘 다 가지고 있습니다. 네이버는 네이버 플러스를 쿠팡은 로켓와우란 걸 만들어 아주 훌륭하게 꾸려나가고 있는데요. 로켓와우는 회원 수가 470만 명에 달하고, 후발주자인 네이버플러스조차 250만 명을 확보했고 현재 화제도 면에선 가장 앞서가고 있어서 아마 곧 스마일클럽을 따라잡을 듯합니다. 

 

네이버플러스의 기세가 놀랍지요? 곧 스마일클럽은 확실히 따라잡을 것 같습니다. (출처: 네이버 데이터랩)

 

 카카오가 이베이를 인수한다면 네이버와 쿠팡을 따라잡기 위함인데, 솔직히 각이 안 나오는 모양새랄까? 뭔가 탁월한 포인트가 있어야 선두주자를 따라잡을 수 있겠죠? 더욱이 G마켓과 옥션은 상당 부분의 트래픽을 네이버 쇼핑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네이버 쇼핑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다가 굴복하고 다시 들어갔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네이버만 좋은 일을 시켜줄 수도 있기 때문에, 현재처럼 자체 플랫폼 기반의 커머스를 키우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실제로 카카오톡에 쇼핑 탭을 추가하는 등 계속적인 액션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고요.

 특히나 이베이 코리아의 낮은 성장성은 가장 큰 마이너스 요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일단 이베이 코리아는 역사가 오래된 만큼 주요 고객들도 같이 나이를 먹어 왔고요. 20대 미만 고객 비중이 쿠팡 대비 10% 가까이나 낮을 정도로 미래 성장성이 좋지 못합니다.

 

확실히 G마켓 고객들이 더 노후화되었습니다 (출처: 아이지에웍스 모바일인덱스)

 

 실제 앱 지표를 보면, DAU나 MAU, 신규 설치 수 등이 작년 코로나로 인한 시장의 급성장에도 반등하지 못하고 계속 정체되어 있는데요. 아마 대규모 설비 투자 등이 없이는 이러한 늪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말한 온라인 전문 인력은 카카오도 충분하고요. 유료 멤버십은 운영 중이지 않으나, 카카오페이나 카카오뱅크 등 계열사를 활용하면 비슷한 걸 만드는 건 금방일 겁니다. 즉 굳이 이베이가 잘하고 있는 건, 이베이 없이도 카카오 혼자 해낼 수 있고요. 오히려 카카오에겐 없는 물류 역량 등은 이베이는 약하다는 것. 더욱이 선물하기 등 남들이 놓친 영역을 중심으로 커머스 확장을 꾀하는 카카오의 방향성과도 맞지 않기 때문에 차라리 5조 원을 다른 데 투자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저도 여기에는 적극 공감하고 있고요.

즉 카카오는

  1.  이베이의 장점이 쿠팡이나 네이버 대비 탁월하지도, 카카오의 니즈와 부합하지도 않으며,
  2.  노후화되고 있는 고객층, 정체된 성장성을 고려했기에,

이번 입찰 참여를 포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간략히 이베이 코리아가 흥행을 하고 있는 배경과, 인수 시 장점, 그리고 카카오가 입찰에 포기한 배경에 대해 다루어보았는데요. 그렇다면 과연 누가 인수에 가장 유력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SKT가 인수하는 것이 그나마 가장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선 기존에 사업을 운영하던 방식이 비슷하기 때문에 쉽게 흡수할 수 있고요. 시장 3,4위가 뭉친 만큼 일시적인 시장 점유율 상승을 통해 한 번 정도의 기회는 찾아오지 않을까 싶네요. 11번가도 성장성이 정체된 터라, 인수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시장 점유율이 네이버나 쿠팡과 비슷할 때 승부를 봐야 할 걸로 보이고요. 그렇지 않으면 네이버와 쿠팡의 무서운 성장세에 몰려 결국 차라리 인수 안 한 게 나은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반면 신세계는 최근 네이버와의 지분 교환 및 전략적 제휴를 강화하기로 발표하였고, 자금 사정도 넉넉지 않은 걸로 알아서, 네이버와의 동맹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을까 싶고요. 롯데는 솔직히 이베이를 인수한다 하더라도 이커머스 내 반등을 이루긴 쉽지 않아 보입니다. MBK는 아무래도 사모펀드라는 한계가 있어서 시너지 내는데도 제한적일 것으로 보이고요.

 만약 SKT가 인수에 성공한다면, SKT-아마존, 네이버-CJ-신세계/이마트, 쿠팡, 그리고 카카오까지 4자 구도로 시장이 재편되지 않을까 싶네요. 기존에는 네이버-쿠팡 양강 구도에 카카오가 다크호스로 취급되는 형국이었는데요. 여기에 이베이를 인수한 제4의 세력이 다시 파란을 일으킬 수 있을지. 정말 이커머스 시장 내 경쟁구도는 흥미롭게 흘러가네요.

 

김요한님이 뉴스레터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