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소규모 회사들도 업무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많은 정보시스템 도구들을 도입하죠. 기본적인 이메일부터 그룹웨어, 전자결재, 고객관리나 영업관리 프로그램과 나아가 MES, ERP까지 다양합니다. 업무 생산성 향상과 효율화를 위해 비용을 들여 정보시스템을 도입했지만 활용이 미흡하거나 구축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MES(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 : 공장 운영 시스템 또는 생산관리시스템, 제조실행시스템
*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 : 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
경영진의 시스템에 대한 이해 및 의지 부족이 원인
정보시스템 구축에 실패하게 된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크게는 사장이나 관리자들의 이해 부족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비용 대비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도입 실무자 탓만 하죠. 필자의 경험을 예로 한 번 들겠습니다.
2000년 대 중반 한 건설엔지니어링 회사로 이직을 하였습니다. 170 명 정도의 인원에 매출은 약 180억 정도의 회사였습니다. 업무 프로그램은 주로 CAD를 사용했는데 관리파트 업무는 그때까지도 수기와 기본적인 Office 프로그램만 사용하였습니다. 매출 규모는 어느 정도 있으나 과거의 운영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죠. 회사 진단 후 일단 원활한 의사소통과 협업, 효율적인 업무 개선을 위해 그룹웨어, 전자결재, ERP의 순차적 도입을 건의했습니다.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도입의 필요성조차 이해하지 못했고 특히 비용 문제에 대해서 난색을 표했습니다. 지속적인 의견 개진에도 요지 부동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이 어떤 CEO 특강에 다녀오더니 필자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회사에 그룹웨어, 전자결재, ERP 모두들 한꺼번에 도입하겠다는 겁니다. 전 무척 당황했습니다. ‘아니, 왜 갑자기?’. 나중에 알고 보니 사장은 회사의 필요성이나 업무 개혁의 측면에서 도입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특강 강사의 “여러분! 아직까지 ERP 도입하지 않은 회사 없죠?”라는 질문 하나였습니다. 그렇게 설득해도 안 듣더니 조금 부끄러웠나 봅니다. 뭔가 찜찜했으나 사장의 지시니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장이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해야 임직원들도 따를 텐데 회의 때 본부장, 팀장들에게 ‘협조하라’라는 말뿐이었습니다.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니 어떠한 지원도 없이 혼자 구축 업무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구축업체들과 협업을 통해 각 시스템 간의 연동이 가능하도록 통합적으로 구축을 마쳤습니다.
그 후 1년쯤 지났나요? 그때부터 닦달이 시작되더군요. “비싼 비용을 들여 시스템을 구축했는데 왜 매출이 오르지 않고 업무 개선이 되지 않느냐?”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 사장과 경영진은 프로그램 도입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환상을 가진 것입니다. 사장의 이해와 의지 부족도 그 원인이죠. 그 이후 다른 회사에서 정보시스템을 구축할 때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그 당시 ‘ERP의 저주’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ERP 구축을 담당했던 임직원들이 구축 후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니 질책을 받아 퇴사하거나 이직을 많이 해서입니다. ERP 하면 잘린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지요. 지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정보 통합 시스템의 저주’라는 말이 있더군요. 비싼 비용을 들여 도입했는데 제대로 운용되지 못하는 다양한 경우들을 말한다고 합니다.
정보시스템 구축에 실패하는 이유
이렇듯 대다수 중소기업에서 정보시스템을 도입해서 운용할 때 실패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구축 실패 시 후유증이 큰 ERP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실패하는 몇 가지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도입 시 비용적인 측면만 고려합니다. 비교 견적을 통해 최종 금액만 확인하는 것이죠. 도입 시 가성비를 고려하되 회사에 어떤 효과와 개선을 가져오는지 고려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이 같은 기본적인 사항은 무시한 채 싼 것만 고집합니다. 세상에 ‘싸고 좋은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단순히 업체에서 프로그램을 구매하든가 구축하는 외주업체에 맡겨 버립니다. 우린 잘 모르니 알아서 해 달라고 하는 거죠. 중소기업이 도입하는 프로그램은 패키지가 많습니다. 패키지 프로그램은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를 적용해서 표준화되어 있기 때문에 회사의 업무방식을 그 프로그램에 맞춰야만 합니다. 기존의 업무방식이 여기에 한참 벗어나 있다면 도입한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데 혼란이 발생할 밖에 없습니다. 업무개선과 효율화를 위해 도입했는데 반대로 비효율이 발생하는 겁니다.
세 번째는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라고 생각하여 회사의 상황과 역량에도 맞지 않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경우입니다. 시스템을 도입할 때는 직원들이 현재 하고 있는 일과 업무가 흘러가는 프로세스를 충분히 분석해야 합니다. 도입 후 원활한 운영을 위한 인력이 충분한지도 검토해야 합니다. 이 부분을 고려하지 않고 도입하게 되면 충동구매의 후회만이 남을 뿐입니다.
네 번째는 도입 후 당장의 업무 편의를 위해 도구를 비효율적으로 사용합니다. ERP 도입 후 일부 팀에서만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자결재를 도입했는데 이메일로 보고합니다. 그룹웨어를 도입했는데 게시판으로만 사용합니다. 업무용 메신저를 사용하지 않고 ‘카카오톡’같은 개인 채널로 의사소통을 하죠. 회사에서 이 같은 경우들은 비일비재합니다.
다섯 번째는 사장과 경영진의 시스템에 대한 이해 부족을 들 수 있습니다. 도입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회사의 실제 역량을 잘 모르고 그 효과를 기다리지 못합니다. 중견기업이나 대기업 임원이 와서 구축하면 잘 운용될 것이라는 착각도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사장의 강력한 의지가 부족한 것입니다. 사장이 이러한 프로그램과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높다고 하더라도 혁신의 강한 의지가 없으면 흐지부지되게 마련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사장과 경영진의 의지인 것이죠. 이것만 뒷받침되더라도 정보시스템 구축의 절반 이상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정보시스템 도구들은 회사의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하기 위한 장치(Tool)의 일종입니다. 이 장치를 이용하여 업무가 자동적으로 돌아가게 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하여 효율적, 효과적으로 개선하는 것이죠. 도입 전 현재의 회사 역량, 직원들이 일하는 방식과 업무 프로세스에 대한 분석이 필수적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사장의 시스템에 대한 이해, 강력한 추진 의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장은 성과에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당장 성과가 나오는 시스템은 없습니다. 단순히 프로그램이나 정보 시스템 도입을 지시하고 구축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기업시스템코디(조현우) 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