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를 써 보자

 

 

구직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뭘까? 바로 이력서 쓰기다. 영국에서는 이력서를 CV라고 부르는데, 이는 Curriculum Vitae의 약자이다. “Course of Life”라는 뜻을 지닌 이 라틴어 단어는 한국어로 번역하면 “삶의 과정” 정도가 되겠다. 내 삶의 과정을 A4용지 종이 한두 장 안에 다 담아야 한다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첫 직장에서 3년 반 동안 이직 시도 한 번 해보지 않았으니 이력서도 업데이트가 안 된 지 오래였다. 4년 만에 이력서를 쓰려고 책상 앞에 앉으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나 3년 반 동안 뭐 했더라…’ 그간 했던 일을 모두 기억해내는 건 무리였다. 다행히 나에겐 참고할 자료가 있었다. 첫 직장에는 매년 연초에 팀 목표와 개인 목표를 설정하고 연말에 그 목표를 기반으로 성과를 평가하는 프로세스가 있었는데, 퇴사하기 전에 이 자료를 정리해 놓은 게 흐린 기억을 더듬는 것보다는 훨씬 도움이 됐다. 이를 토대로 이력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검색창에 “How to write a CV”를 치고 관련 자료를 열심히 읽어보았다. 영국에서 CV는 정해진 형식 없이 자유롭게 작성하면 된다. ‘자유롭게’라는 말이 약간은 막막하게 느껴졌지만, CV 예제를 검색해 보면 여러 스타일의 템플릿을 찾을 수 있었다. 그중 마음에 드는 템플릿을 찾아서 사용하면 된다. 공통으로 기입해야 하는 정보로는 연락 가능한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 최종 학력과 전공 과목, 그리고 이전 직장에서 지금까지 했던 업무 정도가 있다. 관련 교육을 받았거나 자격증을 땄다면 그것도 기재하면 좋다. 여기까지는 한국의 이력서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한국과 다른 점은 이력서에 지원자의 사진이나 가족 관계 같은, 일과 관련 없는 정보는 넣을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런 쓸데없는 걸 기재하면 이력서를 읽는 쪽에서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다. 다시 생각해보니 한국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넣었던 증명사진과 가족 관계 항목이 왜 회사 지원에 필요한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국에서 골머리를 썩었던 자소서도 영국에서는 작성할 필요가 없다. 짧은 분량의 Cover Letter(편지 형식으로 자신의 경력을 설명하는 글)를 자율적으로 내도 되지만, 어디까지나 자율적인 항목이며 한국의 자소서처럼 주제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영국의 CV는 그저 군더더기 없이 자신의 기본 정보와 경력을 기재하는 곳이다. 일과 관련 없는 내용도 적어야 하는 한국의 이력서보다는 훨씬 나아 보였다.

 

 

영국 CV 예시 (출처 : https://cvgenius.com/cv-examples/business-analyst-cv)

 

 

이제 CV에 어떤 항목을 넣어야 하는지는 알았으니 본격적으로 내용을 채워야 할 차례. 4년 전 첫 회사에 지원할 때 이력서에 적은 내용은 고작해야 대학교 전공과 기타 교내외 활동 이력, 그리고 나의 열정을 드러낼 자소서 몇 편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3년 반의 경력이 생겼고, 그동안 한 일을 몇 줄 안에 임팩트 있게 담아야 했다. 욕심 같아서는 했던 일을 다 적어서 내가 이렇게 다양한 일을 했다는 걸 어필하고 싶었지만, 그걸 하나하나 다 적었다가는 읽는 사람을 지루하게 해서 오히려 역효과를 낼 판이었다. 내가 한 일 중 어떤 걸 적어야 내 경력이 가장 잘 드러날지 고민했다.

고심 끝에 나름 세웠던 기준은 특정 회사 내에서만 중요하게 여겨지는 일이 아닌 대외적으로도 중요한 이력을 선별하는 것이었다. 어떤 일이 중요한지에 관한 판단은 다른 회사의 채용 공고에서 힌트를 얻었다. 여러 채용 공고에서 공통으로 원하는 기술이 있다면, 그 기술을 활용해서 일한 경험을 이력서에 기재하는 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비슷한 경력을 가진 다른 개발자들의 이력서도 참고했다. 아직 한국에서는 조금 생소할 수 있지만 외국에서는 직장인들이 LinkedIn이라는 플랫폼을 커리어 포트폴리오와 네트워킹을 위해 활발하게 사용한다. 여기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경력을 상세하게 올려놓기 때문에 LinkedIn을 공개적인 이력서 창고라고 봐도 무방하다. 여기서 간단한 검색을 통해 나와 비슷한 경력을 가진 다른 개발자들의 이력서를 볼 수 있었고, 그들이 어떤 이력을 주로 기재했는지 참고하여 영감을 얻었다.

그렇게 나름 만족할 만한 CV를 완성한 후 본격적으로 구직 방법을 찾아보았다. 영국에서 주로 구직을 위해 사용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구직자가 직접 회사의 채용 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첨부해 지원서를 제출하는 방식, 두 번째는 구직 플랫폼에 이력서를 올려놓으면 채용 담당자가 구직자에게 먼저 면접 요청을 하는 방식, 세 번째는 LinkedIn에 올려놓은 프로필을 보고 채용 담당자가 잠재적 구직자에게 연락해서 면접으로 이어지는 방식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방식은 얼핏 들으면 비슷해 보이지만, 구직 플랫폼은 현재 구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인 반면에 LinkedIn은 현재 구직 상태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이용하는 플랫폼이라는 점이 다르다. 따라서 구직 플랫폼에서의 면접 요청이 실제 면접으로 성사될 확률이 훨씬 높다. 빠르게 면접을 보고 일자리를 구하고 싶었던 나에게는 구직 플랫폼이 가장 괜찮은 수단으로 보였다. 그날 저녁 며칠간 열심히 작성한 이력서를 구직 플랫폼에 올렸다. 다음 날 아침부터 채용 담당자들이 내 이력서를 볼 수 있게 열람된다는 안내 메일이 왔다. 과연 내 이력서가 면접으로 이어질지 궁금해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엄지현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