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는 배움의 기회일 뿐

 

 

“미친 거 아니야? 죽고 싶어?”

 

 

한국에서 회사에 다닐 때 옆 팀에서 어느 차장님이 실수한 사원에게 죽고 싶냐며 소리를 지르는 걸 들었다. 어찌나 큰 소리로 혼을 내던지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이 다 그 소리를 들었을 정도다. 호되게 혼나는 마당에 사람들의 시선까지 더해졌으니 그 사원이 얼마나 속상했을지 짐작이 가서 내가 다 안타까웠다. 일부러 못된 마음을 먹고 일을 망친 것도 아니고, 정말 말 그대로 실수일 뿐인데 저런 심한 말까지 꼭 해야 했을까? 실수 한 번에 죽고 싶냐는 소리까지 듣다니 정말 살벌하다고 생각하며 한 편으로는 그 차장님이 내 상사가 아닌 것에 안도했다.

 

 

 

 

어떤 직장에서든 누군가 실수를 저지르는 상황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영국 회사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영국 회사에서는 실수한 사람을 공개적으로 나무라는 광경은 보기 어렵다. 게다가 저런 심한 말이 오가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는 영국인이 한국인보다 마음이 너그럽거나 인내심이 뛰어나기 때문은 아니다. 관점의 차이일 뿐이다. 영국에서는 누군가 실수를 저지르면 실수한 사람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실수할 여지를 준 환경을 탓한다. 그리고 그 환경을 개선할 방안을 찾기 위해 모든 팀원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한다. 사람을 탓하는 건 그 상황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환경을 개선해야 다음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패에서 배울 점을 찾는 Postmortem

 

시스템 장애가 발생하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원인은 사람의 실수일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시스템의 오류일 수도 있고,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일 수도 있다. 어떤 원인으로 발생한 일이든 이러한 실패에는 배울 점이 있다. Postmortem은 장애 원인 분석을 통해 실패에서 배울 점을 찾는 회의이다. Postmortem은 ‘부검’이라는 뜻인데, 회의에 이런 이름을 붙인 건 그만큼 장애의 원인을 샅샅이 파헤친다는 의미이다.

먼저 이 장애가 언제 어떻게 발생했는지, 그리고 고객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논의한다. 그리고 이 장애가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다. “누군가의 실수였다”라는 건 표면적인 원인에 불과하므로, 이 회의에서는 실수할 여지를 준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 위해 “why?”라는 질문을 반복한다. 계속 질문하다 보면 근본적인 원인에 이르게 된다. 예를 들면 충분한 보안 장치가 마련되지 않았다거나, 그 직원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상태로 일에 투입이 되었다거나 하는 것들이 근본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았다면 그 원인을 제거하여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방지한다. 보안이 문제였다면 보안을 강화하고, 교육이 문제였다면 교육 제도를 개선하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특정 팀원을 비난하거나 처벌하는 방향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비난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분위기만 흐려서 역효과를 낼 수 있다. Postmortem 회의의 목적은 실패를 배움의 기회로 삼아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시간에는 그저 목적에 충실하게 해결 방안을 찾으면 된다.

 

 

끊임없이 개선점을 찾는 Retro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것도 좋지만, 가능하다면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것보다 외양간을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편이 낫다. 외양간을 점검하듯 지속해서 팀의 업무 환경을 검토하는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Retro 회의가 있다. Retro는 Retrospective의 줄임말로, 한국어로 ‘회고’를 뜻한다. 말 그대로 현재 일하는 방식을 돌아보며 개선점을 논의하는 회의이다. 그동안 잘한 점, 개선이 필요한 점, 그리고 이를 개선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이 회의의 목적이다. 전형적인 진행 방식으로는 팀원들이 각자 포스트잇 노트에 자기 생각을 적어 해당하는 열에 붙이는 방식이 있으며, 원격 근무를 하는 경우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기도 한다.

 

 

Retro 회의 진행 방식 예시

 

 

잘한 점 – What went well?

 

개선점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떤 것들을 잘하고 있는지 얘기하는 것도 중요하다. 잘하고 있는 부분은 칭찬해주고 계속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해 주어야 팀원들의 사기를 높일 수 있다. 팀에서 함께 이뤄낸 성과에 대한 언급, 개인적인 시간을 내서 다른 팀원을 도와준 동료에 대한 고마움 표현 등 자유롭게 내용을 적는다.

 

개선할 점 – What can be improved?

 

어떤 팀이든 개선할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많은 팀이 이런 점을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지 않기 때문에 오랫동안 같은 방식으로 일하곤 하는데, 오랫동안 고수한 방식이라고 해서 그게 가장 좋은 방식이라는 보장은 없다. 현재 우리 팀이 일하는 방식은 합리적인지, 회의는 너무 많거나 적지 않은지, 보완하고 싶은 부분은 없는지 생각해보고 내용을 적는다.

 

개선 방안 – Action points

 

개선할 점을 찾았다면 그 부분을 어떻게 개선할지 고민하여 아이디어를 낸다. 여기서 개선 방안은 최대한 구체적이며 실행할 수 있게 적는 것이 좋다. 그리고 방안마다 담당자를 지정하여, 다음 회의까지 해당 담당자가 책임지고 이 방안이 실행될 수 있도록 한다.

 

 

 

 


 

 

완벽한 팀이 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한 달 전보다, 1년 전보다 나아질 수는 있다. Postmortem과 Retro 회의는 꾸준히 발전하는 팀이 되기 위한 노력이다. 한국에도 이런 기업 문화가 더 많이 퍼졌으면 좋겠다. 누군가 실수했을 때 비난하고 징계하는 대신 이를 배움의 기회로 삼기를 바란다. 실수가 무서워 도전하지 않고 고여 있는 것보다는 수없이 실수하고 그만큼 많이 배워 성장하는 편이 낫다. 실수는 배움의 기회일 뿐, 죽고 싶냐는 소리를 들어야 할 일이 아니다.

 

 

 

엄지현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