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 매니징이 안 좋은 이유

 
 

회사에서 새로운 팀장을 뽑았다. 전 상사가 정리해고되고 한동안 팀장이 없어 방황하던 우리 팀은 새로 합류한 팀장 C에게 희망을 걸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에게 희망을 걸어야만 했다. 잘 따르던 상사가 해고된 건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계속 좌절하고 있다가는 우리가 다음 해고 대상이 될 수도 있었다. 상사를 잃은 아픔을 털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녀가 이 팀을 잘 이끌어 줄 좋은 리더이기를 바라야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C는 우리가 바라던 좋은 리더는 아니었다. 그녀가 좋은 리더가 아닌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그녀는 팀원들을 못 믿는 팀장이었다. 우리가 신뢰를 무너뜨릴만한 행동이라도 했으면 억울하지 않을 텐데 그런 사건이 있을 틈도 없이 그녀의 불신은 시작되었다. 상호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일하던 방식에 익숙하던 우리에게 그녀의 불신은 큰 스트레스를 주었고, 우리는 리더의 신뢰가 팀 전체의 분위기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몸소 깨달았다. 그녀의 불신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표출되었다.

 

 


 

 

팀원을 마이크로 매니징 한다

 

리더가 팀원을 못 믿어 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지시하고 감시하는 것을 ‘마이크로 매니징’이라 부른다. C는 모든 것을 본인이 원하는 대로 통제하려고 하는 전형적인 ‘마이크로 매니저’였다. 팀원들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준 전 상사와 달리, 그녀는 하나부터 열까지 본인이 직접 지시하고 의사결정을 내려야 직성이 풀리는 팀장이었다.

마이크로 매니징은 리더와 실무자 모두에게 악영향을 끼친다. 리더는 작은 것까지 간섭하다가 불필요하게 자신의 업무량을 늘리게 되고, 실무자는 작은 것조차 스스로 결정할 수 없으므로 사기가 저하된다. 또한 지시받는 업무만 처리하는 방식에 익숙해진 팀원은 추후에 주도권을 부여받는다고 해도 자신 있게 의사결정을 내리기가 어렵다. 직접 의사 결정을 내려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본인의 결정에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고, 결국 다시 상사의 마이크로 매니징에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C는 업무 방식뿐 아니라 근무 시간까지 마이크로 매니징 했다. 이전까지 우리 회사는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운 편이라 일찍 출근해서 일찍 퇴근하는 팀원도 있었고, 조금 늦게 와서 더 늦게까지 일하고 가는 팀원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매일 하는 회의를 아침 9시 반으로 잡은 뒤부터는 이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모두가 9시 반까지 회사에 도착해야 했다. 교묘하게 출근 시간의 자유를 빼앗은 것이다. 게다가 재택근무라도 하는 날에는 출근과 동시에 팀 메신저에 공지하고, 잠시만 쉬는 시간을 가져도 꼭 얘기하고 가라는 등의 지시를 하며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려 했다.

 

 

 

 

성장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성장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전 상사는 ‘좋은 개발자는 어떤 기술이든 빠르게 배울 수 있다’는 모토 하에 전문 분야가 아닌 업무도 다양하게 경험해 볼 수 있게 해 줬는데, C는 그런 기회를 전혀 주지 않는 팀장이었다. 그녀는 팀원들이 각자 익숙한 영역에서만 계속 일하도록 했고, 새로운 일을 배워보고 싶다고 얘기하면 ‘다음에’를 연발하며 끝내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 또한 그녀가 팀원들의 업무 학습 능력을 믿지 못해서 발생한 문제였다.

성장이 상당히 중요했던 나에게는 이 문제가 마이크로 매니징보다 더 큰 스트레스를 줬다. 나는 입사하기 전 면접 단계부터 전 상사와 커리어 목표에 관해 많은 얘기를 나누며 새로운 영역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었다. 그는 나의 커리어 목표를 전적으로 지원해 주었고, 그의 지원 하에 다양한 일을 배우며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이 나의 업무 만족도를 높여 주었다. 그런데 팀장이 바뀜과 동시에 그간 쌓아 온 것들이 물거품이 되어 버리다니, 여간 실망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성장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기계의 부품처럼 일하는 팀원들은 업무에 흥미를 잃는다. 단편적으로는 팀원들이 각자 익숙한 전문 영역에서 일하는 것이 최대의 성과를 내는 방법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기계가 아닌 사람이기에, 각자의 커리어 목표가 있고 일을 통해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그 목표와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않는 직장에서 과연 최대의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오히려 사기를 저하시켜 성과를 떨어트리는 역효과가 나기 십상이다.

 

 

 

 

 


 

 

나는 그녀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이렇게 팀원들을 못 믿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 보았다. 본인이 보기에 우리 팀 성과가 미덥지 않아서? 아니면 넋 놓고 있다가 얼마 전 회사에서 해고된 전 팀장과 같은 상황이 될까 봐? 그것도 아니면 본인이 팀원들보다 훨씬 똑똑하다고 생각해서? 이유가 무엇이든 이 문제는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상사에게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게 무척 불편했지만, 대화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용기를 내어 그녀와 대화를 시도했다.

“신뢰는 얻어내야 하는 거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야.”

돌아온 그녀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그녀에게는 신뢰가 아닌 불신이 기본값이었던 것이다. 우리 팀원들이 못 믿을 만한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믿을 만한 성과를 보여주기 전까지는 우리를 완벽히 신뢰하지 못한다는 게 그녀의 원칙이었다. 신뢰를 구걸해야 한다는 대답에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팀원들을 전적으로 믿어주던 리더와 일했을 때, 우리는 각자 책임감을 갖고 시키지 않은 업무도 주도적으로 해나가던 팀이었다. 그와 달리 팀원들을 믿지 못해 모든 걸 지시하고 감시하는 C 밑에서는, 하나라도 실수하면 그녀가 우리를 더 못 믿게 될까 두려워 시키는 일만 하는 꼭두각시가 되고 있었다.

신뢰를 바탕으로 일하는 팀과 불신하는 리더 밑에서 일하는 팀은 조직 분위기에서부터 업무 성과까지 확연한 차이가 난다. 리더가 팀원들을 믿어 주면 그들도 자신감을 가지는 반면에, 리더가 팀원들을 믿지 못하면 그들도 스스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렵게 용기를 내어 피드백을 줬는데도 변하지 않는, 아니 변할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 우리 팀의 리더를 보며 나는 이 팀의 암담한 미래를 직감했다. 그리고 계속되는 신뢰 구걸에 지칠 때쯤 퇴사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회사에서 맞은 두 번째 위기였다.

 

 

엄지현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