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석 잔 정도 커피를 마신다. 보통 두 잔은 직접 내려 마시고, 한 잔은 커피 매장을 방문해 마신다. 한국에서는 커피를 조금만 알더라도 아는 커피 브랜드를 열 개 가까이 말할 수 있지만 캐나다 커피 시장은 정말 단순하다. 캐나다 국민 커피라 불리는 팀홀튼(Tim Hortons)이 약 50%, 스타벅스가 약 25%의 시장을 차지하고 있다. 커피 전문점은 아니지만 맥커피 역시 스타벅스만큼 성장했다. 차를 타고 거리에서 만나는 커피 브랜드는 이렇게 팀홀튼, 스타벅스, 아니면 맥커피가 전부다. 그나마 10년 전까지 팀홀튼이 80%의 점유율로 독점했던 시장을 스타벅스가 조금씩 영역을 확장한 결과다. 캐나다 스타벅스 역시 한국과 비슷하게 차별화된 서비스로 충성 고객을 늘리고 있다. 그런데 한국 스타벅스엔 없고 캐나다 스타벅스엔 있는 서비스가 있다. 바로 무료 리필이다.

 

 

 

 


 

 

캐나다에서는 대도시 다운타운을 제외하고는 한국처럼 걸어서 동네 커피 매장에 가서 여유롭게 커피 한잔 하는 낭만 따위는 없다. 땅이 워낙 넓고 사람들이 밀집해서 살지 않기 때문에 커피 매장은 대개 큰 사거리나 쇼핑 단지 안에 위치한다. 때문에 커피를 마시기 위해선 보통 차를 타고 나와야 한다. 사는 집에서 차로 가장 가까운 매장은 팀홀튼이 4분, 스타벅스가 5분 거리다. 가격은 팀홀튼 미디엄 사이즈 라테가 3.66 캐나다달러(약 3360원), 스타벅스 톨 사이즈 라테가 5.25 캐나다달러(약 4820원)다. 물론 맛과 서비스는 스타벅스가 앞서지만 캐나다 사람들은 캐나다의 전설적인 아이스하키 스타 팀홀튼이 만든 팀홀튼 커피에 대한 충성도가 여전히 높다. 나 역시 매일 마시는 입장에서 좀 더 가깝고 많이 저렴한 팀홀튼을 주로 이용한다. 그런데 매장에서 오래 머물고 싶을 땐 거의 매번 스타벅스를 방문하는데, 여기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한국 스타벅스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서비스

 

한국에서 스타벅스를 좋아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일정 수준의 퀄리티를 항상 유지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스타벅스 직원들의 차별화된 서비스다. 캐나다 스타벅스도 크게 다르진 않다. 거기에 더해 놀라운 서비스가 하나 더 있다. 처음부터 이를 알아차린 건 아니다. 어느 날 스타벅스 매장 카운터에 있는 무료 리필 스티커를 발견했다. ‘뭐지? 스타벅스에서 무료 리필을 해줄 리가?‘라고 생각하고는 바로 검색했다.

 

 

스타벅스 앱에서 볼 수 있는 리필 서비스 안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스타벅스 멤버십 카드로 음료를 구입하면 같은 매장에서 브루드 커피나 티를 무료로 리필해 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라테를 마셨다면 다시 라테로 리필은 안되지만 브루드 커피인 피케 플레이스 로스트(Pike Place Roast)로 리필이 가능하다. 톨 사이즈로만 리필해도 2.78 캐나다달러(2550원) 짜리 커피를 무료로 마실 수 있다. 내 경우는 매장에서 주문한 커피를 마시고, 매장을 나서기 전에 리필해 운전하면서 마시거나 집에 들고 와서 마시는 편이다. 나처럼 하루에 커피를 두 잔 이상 마시는 커피 덕후들에겐 이보다 더 흡족한 서비스가 없다.

캐나다에서만 가능한 것인지 검색해 보니 아니었다. 우선 캐나다처럼 미국에서도 무료 리필 서비스를 제공한다. 일부 국가에선 특정 음료 메뉴를 시켰을 때만 가능하고, 2천 원 미만의 추가 요금을 받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아예 리필 서비스가 없다. 

왜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 언론에서 이슈를 제기한 적이 몇 차례 있었는데 한국 스타벅스의 답변은 국가별로 서비스 차이가 있고 한국에선 구매 시 별을 리워드로 제공해 12개를 모으면 무료 쿠폰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별을 리워드로 제공하는 것은 캐나다도 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은 한 번에 1잔을 주문하든 10잔을 주문하든 1개의 별을 주는데 반해, 캐나다는 주문 금액당 별을 제공하고 있어 훨씬 합리적이다. 한국 스타벅스가 무료 리필 서비스에 대해 검토한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비용절감 차원에서 검토 조차 할 수 없을 수도 있고, 리필 문화에 익숙한 한국 소비자들이 애용하게 되면 매장 직원들이 정신없이 바빠질 것을 염려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초기 세팅이 중요하다

 

무료 리필 서비스의 타겟 고객은 매장에 일정 시간 이상 머물며 커피를 즐기는 고객이다. 실제 스타벅스는 다른 브랜드에 비해 매장에 머무는 시간이 길다. MBA 수업에서 스타벅스 케이스 스터디를 한 적이 있는데 경쟁 브랜드에 비해 평균 두 배 이상 오래 머문다는 리서치 결과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처럼 오래 머무는 스타벅스 고객들에게 무료 리필 서비스는 분명 많은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다. 

 

 

최근에 리필해서 마신 아이스 브루드 커피

 

 

그래서 한국 스타벅스가 처음부터 무료 리필 서비스를 도입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는 한국에서 어느 브랜드도 넘볼 수 없는 지위를 누리고 있기에 추가 도입은 요원하기 때문이다. 서비스 산업에서는 처음부터 있던 것을 빼는 것보다 처음에는 없던 것을 더하는 것은 몇 배 더 힘들다. 초기 세팅이 중요한 이유다.

좀 더 시야를 넓혀봐도 초기 세팅의 중요성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데이터 분석 컨설팅 회사에서 국내 대기업 프로젝트를 리드했을 당시 고객사들에게 가장 먼저 강조했던 것이 바로 초기 세팅을 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온라인 채널에서 고객 데이터를 수집할 때, 어느 정보를 요청하고 해당 정보를 어떤 형태로 저장해야 하는지부터 설계를 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고객 데이터가 이미 많이 쌓였을 때 데이터를 모두 폐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수집해야 하는 악몽 같은 상황을 마주할 수도 있다.

인하우스 컨설턴트 시절 컨설팅펌인 베인앤컴퍼니로부터 교육받았던 내용 중 하나도 초기에 힘을 많이 써야 나머지 과정이 순탄하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성공적인 한 주를 보내기 위해선 월요일 전날 10분만이라도 그 주에 해야 할 일을 정리하고 특히 중요일 일들은 가급적 월요일에 소화하도록 일정을 짰다. 그렇게 하면 절대량 기준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중요도 기준으로 80%의 일을 월요일에 마칠 수 있었고, 남은 4일 동안은 나머지 20%의 일을 충분한 시간을 갖고 할 수 있었다. 

 

 

초기 세팅만큼 중요한 미래 확장성

 

얼마 전 토론토에서 왕복 22시간을 운전해 시카고를 다녀왔다. 마침 시카고 시내에 있는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Starbuck Reserve Roastery)를 방문할 행운을 얻었다. 리저브 로스터리는 매장에 커피 원두를 직접 볶는 시설이 있는 곳으로 전 세계에 시카고를 비롯해 시애틀, 뉴욕, 상하이, 밀란, 도쿄 등 6개 도시에만 있다. 그중에서도 시카고 매장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스타벅스 매장이기도 하다. 

 

 

시카고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전 세계에서 6개 밖에 없는 리저브 로스터리 매장이며, 가장 큰 매장이기도 하다.

 

 

매장은 5층 규모로 1층부터 Reserve Coffee Bar, Princi Bakery & Cafe, Experiential Coffee Bar, Arriviamo Cocktail Bar, Roof Terrace가 위치해 있다. 스타벅스 고유의 분위기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볼거리, 즐길거리, 먹을거리는 몇 배로 키웠다. 고객 경험 관점에서 이런 매장이라면 줄을 길게 서더라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로 가득 찬, 아니 브랜드의 확장성까지 충분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초기 세팅의 중요성만큼이나 미래 확장성을 제시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고객 입장에선 당장이 아니어도 좋다. 본인이 좋아하는 브랜드가 그리고 있는 미래 모습이 어떠한 지 알고 싶다. 그리고 그것을 볼 수 있는 곳이 한 곳이라도 있다면 기꺼이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 방문할 의사가 있다. 스타벅스와 비슷한 형태의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커피 브랜드 중에 이 정도로 미래 확장성을 보여주는 브랜드는 내가 아는 한 없다. 아쉽게도 아직 우리나라엔 리저브 로스터리가 없다. 이유가 있겠지만 어느 나라보다 높은 브랜드 충성도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 스타벅스 고객 입장에선 아쉬운 대목이다. 결과론적이지만 초기에 리필 서비스를 고려하지 않은 것도 아쉽고, 미래 확장성을 볼 수 있는 리저브 로스터리가 없다는 점도 아쉽다. 

물론 한국 스타벅스도 차별화된 요소들이 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여러 이벤트들이 있다. 나 역시 캐나다에서 놀러 나갈 땐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스타벅스 캠핑 의자를 들고 간다. 하지만 이런 이벤트들은 커피에 집중한 이벤트는 아니어서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스타벅스는 한국 소비자에 맞춤 서비스로 충분히 잘하고 있고 성과로 이를 증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사실 하나. 캐나다 스타벅스 매장에서 무료 리필을 이용하는 고객들은 얼마나 될까? 매장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략 200명 정도가 이용하고 비용으로 환산하면 500 캐나다달러(약 46만 원)다. 해당 비용은 모두 본사에서 부담한다. 우리나라에서 도입한다면 얼마나 많이 이용할지 궁금하다.  

 

Mark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