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재미가 없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맞는 말이에요. 어떻게 일이 항상 재미있을 수 있겠어요. ‘열심히’와는 상관없이 저도 하는 일이 매번 즐겁고 재미있지는 않습니다. 즐거운 날보다 힘들고 지치는 날이 더 많아요.

 

일이 ‘항상’ 즐거울 수 없는 것처럼, 일에서 ‘모든’ 재미를 기대하기 또한 힘듭니다. 생각해 보면 ‘재미’는 참 다양한 스펙트럼입니다. 여유롭게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거나, 친구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는 것도 분명 재미있습니다. 그렇다고 힘든 일이 재미있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누군가는 힘든 운동을 하면서도 재미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에서 기대할 수 있는 재미는 다채로운 스펙트럼 중 어떤 즐거움일까요? 

 

 

 
 

힘든 운동을 하면서 즐겁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쉬지 않고 무거운 덤벨을 들어 올리는 크로스핏이나, 다리가 부서질 것 같지만 멈추지 않고 달리는 마라톤을 즐기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모두 운동을 하는 순간에는 팔과 다리가 타들어 갈 것처럼 아플 거예요.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인간은 재미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러너스 하이’입니다. 

 

러너스 하이는 엔돌핀이라는 호르몬 덕분에 느낄 수 있다고 해요. 엔돌핀은 고통을 줄여 주는 호르몬으로 신체적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우리의 몸이 분비합니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인간은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야 하는 순간들이 많았다고 해요. 엔돌핀은 인간이 고통을 이겨낼 수 있게 해 주었고, 그래서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어 준 호르몬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엔돌핀으로 느끼는 재미를 ‘고통을 이겨내는 즐거움’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최근 ‘도파민 중독’, ‘도파민 디톡스’로 화제가 되고 있는 호르몬 도파민도 재미와 관련된 호르몬입니다. 최근에는 도파민이 부정적으로 묘사되면서, 피하거나 이겨내야 하는 것으로 치부되지만 사실 도파민은 동기부여와 몰입을 만들어 내는데 필수적이에요. 도파민은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달성할 때 발생합니다. 도파민은 원시 시대부터 인류가 큰 먹잇감을 사냥하고, 큰 돌을 깎고 옮겨 멋진 건물을 만들고, 여러 사람을 모아 혼자서는 하기 힘든 일에 도전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도파민은 목표에 도전하게 만드는 생물학적 인센티브라고 불려요. 도파민이 허락해 주는 재미는 ‘목표를 달성하는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엔도르핀과 도파민 외에도 재미를 느끼게 허락해 주는 호르몬들이 있어요. 바로 옥시토신과 세로토닌입니다. 옥시토신은 우정, 사랑, 공감과 관련된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해 줍니다. 옥시토신 덕분에 원시 시대부터 인류는 부모가 자식을 길렀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유대하고 신뢰할 수 있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친밀감의 호르몬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이 즐거운 이유는 옥시토신 덕분입니다.

 

마지막 세로토닌은 만족의 호르몬이라고 불립니다. 세로토닌은 원시 시대의 사람들이 음식을 실컷 먹고 배가 부르거나, 외부의 위협 없이 안전한 상황에 있을 때 행복하다고 느끼게 만들었어요. 최근에는 세로토닌으로 느끼는 재미를 ‘소소한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여유, 휴식, 평온함에서 느끼는 재미와 행복이 세로토닌과 관련이 있거든요. 아무런 걱정 없이 여유롭게 드라마를 보거나 음악을 들을 때 재미를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의 행복이 온전히 호르몬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싫지만, 호르몬이 허락해 줄 때 큰 재미를 느끼는 것은 사실입니다. 재미에 관여하는 다양한 호르몬 덕분에 우리가 즐거움을 느끼는 감정과 상황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형성합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인간이 즐거움을 느끼게 허락하는 네 가지 호르몬 중에서 엔도르핀과 도파민은 고통이나 성취에 대한 행복감이라는 것이에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재미의 스펙트럼 중 절반이 어려운 일에 도전해 성장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인 것입니다. 

 

저는 이런 종류의 재미가 일에서 기대할 수 있는 재미가 아닐까 해요.

 

꼭 일이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운동을 하고, 여행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면서 우리는 목표를 세워 도전하고, 어려움을 극복해 꿈꾸던 것을 이뤄나가는 과정에서 재미를 경험하니까요.

 

일이 재미가 없다면 먼저 일에서 기대하기 힘든 재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에서 옥시토신이 만들어 주는 우정과 사랑의 즐거움이나, 세로토닌이 만들어 주는 여유와 휴식의 즐거움을 기대하기는 힘들기 때문이에요. 그 대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몰입할 만큼 도전적인지,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고 도전해 달성하고 싶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 먼저 생각해 볼 일이에요. 호르몬이 일에서도 재미를 허락하는 스펙트럼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목표를 달성할 때 느끼는 즐거움이기 때문입니다. 

 


해당 콘텐츠는 서현직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