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에는 대표 0명 직원 4명으로, 총 4명이 있다.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표방하는 궤변을 늘어놓으려는 이 아니다. 대표인 내가 직원처럼 일하고 있음을 깨달았을 뿐이다. 그리고 이는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을 초래했다.

일은 많지만 사람은 부족한 스타트업, 대표는 혼자 2~3인분의 일을 해내야 한다. 필자의 경우 경영지원팀, 재무팀, 인사팀, 마케팅팀, 개발팀 업무를 혼자 다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나열해보니 숨이 턱 막혀 온다. 솔직히 말하자면, 하나만 잘하기도 힘들다. 

눈 앞에 쌓인 업무만 쳐내다 보면 지엽적인 문제에 빠져 큰 그림을 놓치기도 한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직원처럼 일한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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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많은 문제가 여기서 출발한다. 이게 무슨 대수야?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내가 앞으로 나열할 문제점들은 당장 회사에 해를 끼치진 않는다. 그래서 그 중요성이 저평가된다. 그러나 몸속에 자리 잡은 암덩이처럼 천천히 내 몸을 갉아먹는다. 

 

“직원만 있는 회사의 문제점”

 

1. 체계 없음

 

체계는 대표가 잡아줘야 한다. 당장 눈 앞의 일을 쳐낸다고 바쁘다면 회사 업무 체계를 잡는 일은 먼 미래의 일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구직자에게 스타트업 입사를 망설이는 이유를 물어보면 많은 수의 사람들이 ‘체계가 없음’을 꼽는다. 맞는 말이다. 스타트업은 신생기업인 만큼 체계가 없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계속 체계가 없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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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은 없어도 불편함이 없겠지만, 직원이 많아질수록 기본적인 체계가 있는 것이 효율적인 운영에 도움이 된다. 체계는 회사에게 하나의 자산이 될 수 있다. 잘 만들어 둔 매뉴얼 하나 열 직원 부럽지 않다. 잘 짜둔 프로세스는 추후에 자동화시킬 수 있다. 또한 체계 속에서 더 빛을 발하는 직원도 있기 마련이다. 모두가 창업자처럼 멘땅에 헤딩하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 빈약한 네트워크

 

바쁘다는 핑계로 네트워킹을 등한시하는 분들이 많다. 물론 네트워킹 한량이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사무실에 혼자 갇혀있는 창업자는 위험하다. 개인적으로 네트워킹은 복권을 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당첨 확률이 조금 높은 복권이다. 예상치 못한 사업 기회가 생길 수도 있고, 회사 외부 제 3자의 입장을 들어보며 내 아이템에 대한 사고 확장이 일어나는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네트워킹을 통해 얻는 정보는 큰 장점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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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 출신 대표님들이 네트워킹보다는 개발 몰두하는 모습을 많이 보이는 것 같다. 필자도 개발을 잠깐 해본 적이 있는데, 한번 몰입하기 시작하면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그리고 업무 강도가 높기 때문에 다른 것에 신경 쓰기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3. 장기계획의 부재

 

직원들은 대표보다 근시안적이다. 이번 달도 무사히 월급을 받는 것이 그들의 가장 중요한 목표이다. 그러나 대표는 다르다. 마일스톤을 짜고 10년 뒤를 바라봐야 한다. 장기계획을 짜는 것 자체가 엄청난 경쟁력이라 생각한다. 비전을 제시하는 대표는 많지만, 그까지 가는 구체적인 길을 제시하는 대표는 흔치 않다. 하지만 진정으로 직원들을 동기부여시키는 것은 그 구체적인 과정이다.

매년 같은 일을 반복하면 직원들은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특히 성장형 사고방식이 강한 직원들은 (보통 이런 사람들이 일을 잘한다) 매너리즘에 빠지면 바로 이직한다. 그러나 만약 “2년 뒤에 우리 회사 ㅇㅇ분야에 진입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를 위해서 ㅇㅇ한 역량을 지금부터 키워놔야 한다”며 계획을 알려주면 어떨까?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히 보인다. 만약 장기적인 성장 계획 없이 같은 일만 반복한다면 유능한 인재는 다 나가고 평균적인 사람만 남은 회사가 될 것이다. 

또한 장기계획은 현재의 고통을 버텨낼 수 있는 힘이다. “내가 이일을 왜 해야 하는 거야”라는 불평을 하는 직장인이 많지 않은가. 장기계획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지금 하는 일이 너무 짜증 나고, 가시적인 결과가 안 나와서 재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하는 일이 회사의 장기계획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당장 성과가 안 나와도 조급해할 필요도 없다. 만약 계획도 없는 상태에서 성과가 안 나온다면 학습된 무기력의 늪으로 빠질 것이다. 

 

“해결책 제안”

 

1. 내 안의 2개의 자아, 이 대표와 이 사원. 

 

유튜버 심사인당은 일주일 중 6일은 행동하고 1일은 생각하는 데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아주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내가 제안하는 2가지 자아 개념과 비슷하다. 스타트업은 어쩔 수 없이 대표가 일을 많이 해야 한다. 엄청난 행동력이 필요하다. 그래도 억지로 시간을 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된다. 

필자는 하루에 시간을 정해놓고 2가지 자아를 오간다. 오전 시간에는 주로 스타트업 관련 책을 읽으며 우리 회사에 적용할 좋은 개념이 없는지 살펴본다. 점심은 아주 짧은 시간에 해결해버리고 12시부터 미친 듯이 행동한다.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밤 12시가 되면 다시 책을 읽는다. 이때는 주로 미래의 먹거리를 찾아보고, 다른 회사의 사례를 보며 어떻게 하면 좋은 기업문화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한다. 

 

2.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을 우선순위에 두자

 

네트워킹처럼 소위 말하는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을 우선순위에 놓자. 냉철하게 바라보면 지금 하고 있는 일 중에서 당장 처리하지 않아도 괜찮은 일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데도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 창업자의 조급함 때문이 아닐까? 적어도 필자의 경우엔 조급함이 그 이유였다. 조금 여유를 가지고 네트워킹에 참여하려고 해 보자. 생각보다 업무 일정에 지장도 없고 오히려 리프레시가 되어 더 집중할 수 있었다.

 

Do You Remember When We Disco?

 

JYP의 수장 박진영은 매일 아침 운동을 하고 음정 맞추기 연습, 발성 연습을 한다고 한다. 이 일들이 당장 회사 매출 상승에 도움이 될까? 절대 아니다. 사실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박진영은 경영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본인은 아티스트로 활동하려는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춤을 추고 노래를 하려면 체력관리와 발성 연습을 그만둘 수 없다. 

급하지 않으면서 중요한 일에 시간은 어떻게 확보할까? 체계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박진영이 어느 인터뷰에서 말하길 회사가 본인 없이 자동으로 돌아가게 만드는데 3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 후에 아침 운동과 발성 연습을 맘껏 할 수 있었다. 박진영은 올해 가을, 선미와 함께 <When We Disco>라는 노래로 큰 인기를 얻었다. 

결국 위에서 언급한 3가지 문제는 모두 엮여 있는 것이다. 체계가 있어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시간이 있어야 중요한 일을 할 수 있고, 그래야 장기적인 계획을 실현할 수 있다.

 

 

이대표는 재택근무중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