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브랜딩에 대한 숱한 오용

어려운 주제입니다. 잘 써봤자 본전인 주제죠. 왜냐하면 한국에서 브랜딩(Branding)에 대한 고민을 하고 움직이는 기업 자체가 드물기도 하고 ‘브랜딩’이란 이름으로 밥 먹고 살고 있는 사기꾼도 많기 때문입니다. 보통 ‘브랜딩’하면 인문학적인 내용부터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사후적인 현상을 이론에 갖다 붙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이렇게 손에 안 잡히는 형이상학적인 성질 때문에 브랜딩은 뭔가 있어 보이는 영역, 뭔가 신성한 영역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포지셔닝, 브랜딩, 마케팅, 나아가서 전략, 기획까지 이 있어 보이는 이름에 많은 구직자들이 선망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회사생활 몇 년 한 분들은 알 것입니다. ‘브랜딩’이란 달달한 것이 있기는 한 것인지. 보통의 한국 제조업이나 유통업에서는 해외나 국내 인디 마켓 사례를 카피해서 팔고 보다 더 싼 값에 팔기 위해 비용이랍시고 인건비를 비롯한 모든 비용을 절감하며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브랜딩’이란 말은 소위 경영을 한다는 사람들은 해야만 할 것 같은데 이런 정신세계에서는 구현하기 어려운 말이 되었죠. 그러니 좋게 말해 우리 식 브랜딩 방법이고 나쁘게 말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브랜딩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What’이 아닌 ‘How’에 더 가까운 개념

브랜딩에 대한 가장 흔한 오용은 ‘무엇’을 하는지에 신경을 쓰는 것입니다. 기업 내부에서 브랜딩을 기업의 비전, 전략 등과 거의 같은 뜻으로 쓰니 브랜딩 자체가 어떤 상품 등 보이는 것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한 의류업체에서 청바지로 대박을 냈다고 합시다. 대박이 된 이유가 분명 있을 것입니다. 입었을 때 라인이 돋보인다든지, 전혀 새로운 워싱 방법이 최근의 룩과 어울린다든지 등 말입니다. 이런 팔리는 이유(Selling point)를 다소 물리적으로 들어가 보면 핏을 50년대 모 브랜드 것을 차용했다든지 원단이 미국 모사에서 만드는 프리미엄 제품을 싼 값에 살 수 있게 만들었다든지의 더 기계적인 분석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보통 이렇게 물리적으로 제품을 분석해 나가면서 성공 요인을 보는 것은 결국 ‘무엇’에 할 것인가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음번에도 그 프리미엄 원단으로 청바지를 만들고 다음에도 또 그 워싱을 쓰겠죠. 그리고 패션에 문외한인 경영진이나 마케팅 부서는 우리의 브랜딩은 ‘청바지’, 그중에서 ‘프리미엄 원단’, ‘OOO 워싱’이라고 정의할 것입니다. 그것을 핵심 상품이라고 좀 팔렸다고 더 찍어낼 것입니다. 재고가 역습을 해올 때까지 말이죠.

이런 물리적인 분석의 문제점은 물리적 이상으로 설명해내야 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고 설명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사실 이 청바지가 많이 팔린 더 근원적인 이유는 이 브랜드의 50년대 헤리티지(Heritage) 디자인을 현대에 맞게 녹여낸 실력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고객 입장에서는 생산과 물류 프로세스가 어떤지 모르니 프리미엄 원단을 싸게 만들 수 있는 기술 따위야 회사의 고민이지 전혀 관심 밖일 것입니다. 제품, 제품을 손에 쥐었을 때의 감성. 물리적으로는 다 설명이 안 되는, 물리를 만든 화학적 작용이 브랜딩에 오히려 더 가까운 것이죠.

 

어떻게 빛을 투과시킬 것인가

브렌딩은 외부의 것을 어떻게 자기 것으로 만들어서 보여주느냐에 가깝습니다.

 

그 점에서 브랜딩은 ‘프리즘(Prism)’으로 비유하면 더 와 닿을지도 모르겠습니다. ‘OO화’ 하는 것이죠. 요즘 브랜딩 하면 사례에서 빠지지 않는 ‘무인양품’을 보면 어떻습니까? 많은 제품이 매장 안에 있습니다. 앞선 사례처럼 ‘청바지’라고 부를만한 것은 딱히 없죠. 특별히 더 잘 팔리는 제품, 고객이 ‘무인양품 하면 OOO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고객도 그게 브랜딩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아무 물건이나 뒤죽박죽 쌓아둔 매장에서 전체적으로 필터 어플을 쓴 것처럼 색을 보정하고 각각 상품의 태를 미니멀한 어떤 특징으로 다듬어서 특정 성향을 가지게 만든 인테리어로 바꿔서 내놓은 공간. 그게 브랜딩 된 매장, 우리가 아는 무인양품일 것입니다.

 

무인양품은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제품을 무인양품스럽게 팔고 있습니다 / 출처 : www.muji.com

 

앞서 옷 이야기했으니 패션 브랜드도 보겠습니다. ‘ZARA’는 어떻습니까? 패션업의 세계 최고 부호가 된 오르테가의 이 브랜드도 무인양품 같은 느낌이 듭니까? 물론입니다. 최근의 일부 제품은 제외하면 말이죠. 매장 전체가 어디서 많이 본 색채 톤으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역시 필터 어플을 이번에는 무인양품과 다른 것을 쓴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가격대도 어느 정도의 범위 안으로 모두 조정이 되어 있습니다. 인테리어도 컨템프러리(Contemporary) 패션 매장에 옷만 돋보이도록 미니멀한, 심지어 광고 컷 하나 매장 내에 보기가 어려운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직원들의 복장이나 매장에 흐르고 있는 음악과 조명의 톤도 말할 필요가 없죠. 공간 하나가 완전한 ZARA 프리즘 안에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프리즘을 투과해서 나온 빛들이 아닙니다. 프리즘 그 자체죠. ZARA는 일정한 자신만의 프리즘을 만들었고 거기에 트렌드를 빠르게 투과시키고 있습니다.

 

자라(ZARA) 역시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옷을 자라의 프리즘을 투과해서 팔고 있습니다 / 출처: www.inditex.com

 

이런 고민을 요즘 UI/UX 기획, 디자이너들이 많이 합니다. 랜딩 페이지부터 간단한 인터페이스까지 일관된 경험을, 우리 브랜드만의 프리즘을 통해 원래 하던 것들을 보여주려고 하죠. 하지만 개발의 어려움이나 투자의 부족 등 여러 모양의 어려움으로 하나의 서비스는 덕지덕지 이것저것 붙인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어떤 것은 빠르지만 어떤 것은 인증 절차가 복잡하다든지, 보통 다양성이란 이름으로 특히 유통업에서 자행되고 있는 이런 밸런스 붕괴는 고객에게는 통일된 경험과 감정으로 다가오지 못합니다. 카피한 것이 많고 ‘내 것’이 적으니 기억에 특별히 차별적으로 남을 것도 없죠.

아직도 ‘무엇’이 아닌 ‘어떻게’가 브랜딩을 말하는 것이 잘 와 닿지 않는다면 다음의 예는 어떨까요? 10여 년 전에 인터넷에 돌아다녔던 글 중에 유명한 가수 몇 명의 작사 법에 대해 비교한 글이 공감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래에 일부 내용을 가져와 보았습니다.

만약 여자 친구가 배고픈 내용을 가사로 이 네 사람이 꾸며낸다면…

[유희열]

배고프니? 너의 안색이 오늘따라 더 창백한걸. 너를 위해 향기 좋은 빵을 굽고 맛 좋은 파스타를 요리하고 루즈빛 와인을 따라주고 싶어. 하지만 난 말야. 널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른걸. 너의 향기에 이미 난 취했는걸. 내게 있어 넌 가장 향기로운 빵 가장 맛있는 파스타 가장 감미로운 와인… 너처럼 나도 너의 허기짐을 채워줄 수 있다면…
(트렌디한 드라마를 연상시키는 수필류 같은 말투 )

 

[김동률]

그대 그리도 허기진가요? 창백한 안색이 못내 안쓰럽소. 비록 미천한 나이지만 그대 허락한다면 내 기꺼이 그대를 위해 손을 걷겠소. 배고픈 그대의 맘을 채울 수 없는 편협한 내 사랑이기에
그대의 굶주린 배라도 채울 수 있는 내가 되겠소. 그렇게라도 이 못난 내가 그대의 곁에 머무를 수 있다면 나 후회 없이 그리하겠소.
( 고전을 연상시키는 동률님만의 철학적 문장 )

 

[박진영]

배고파? 느껴봐 봐. 느껴봐 봐. 지금 너의 눈빛에 녹아있는 내 모습을 느껴봐 봐. 우린 그곳에서 처음 만났지. 니 모습에 반해 내 여자를 잊었어. 오늘 밤. 너를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바칠게. 널 채워줄게. 참지 마. (나레이션 : 안돼.안돼. 난 참아야 돼.) 괜찮아. 먹어봐 봐. 참지 말고 먹어봐바. 이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내 뜨거운 사랑으로 녹여줄게. (나레이션 : 안돼,안돼. 난 참아야 돼.) 먹어봐. 먹어봐.

요즘 다시 보니 좀 유치한 느낌이 있지만 사실 이 가수들이 나름의 브랜딩을 확실하게 할 수 있었던 데는 주제를 풀어가는 독특한 관점이 역할을 했습니다. ‘무엇’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풀어내는 것이 포화 상태의 시장에서는 더 중요함을 보여줍니다. 모두 다 노래를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청바지를 만드는데 무엇에 더 집중하느냐에 따라 브랜딩을 만들기도 하고 단순한 장사꾼으로 남는 것이기도 한 것이죠.

 

장기적 모습을 그릴 프리즘이 있는가

그러면 해답은 명확해집니다. 지금 하고 있는 업종에서 ‘무엇이 다른가’보다는 ‘어떻게 다른가’가 장기적인 차이를 만들어주는 것이죠. 특히 경쟁자가 많은 포화 상태의 비기술주도적 산업군에서는요. 물론 제조업의 꽃은 제조, 무엇을 만들까에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적인 성공에는 결국 소비자에게 여기저기 다 있는 것이지만 ‘거기는 다르다’는 프리즘이 있냐 없냐의 차별성으로 귀결됩니다.

어느 정도의 규모가 있다면, 업력이 있다면 ‘무엇’을 중심으로 경영을 생각하는 사고를 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이 포화된 시장에서 접근하고 기억될 것인가. 그 기억을 위해 하는 투자가 진정한 연구개발비로써의 가치를 한다고 할 수 있겠죠. 많은 사무실에서 오늘도 물리적인 것을 계속 브랜딩과 차별화, 전략의 핵심 단어로 쓰지만 정작 그것을 이루는 역량은 항상 눈에 보이지 않고 그렇게 기계적으로 끊을 수 없는 영역에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프리즘을 체크해 볼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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