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느냐 사느냐로 유명한 햄릿은 통찰력을 가진 인물이다. 문제가 무엇인지 간파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민만 했을 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나약한 인물로 묘사된다. 반면에 돈키호테는 풍차에 돌진하는 무모한 행동파이다.

통찰력과 행동력 둘 다 갖기는 쉽지 않다.

통찰력과 행동력을 모두 갖추면 좋겠으나 신께서는 오직 소수에게만 두가지 능력을 같이 주셨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통찰력과 행동력을 구비했다. 왜군과의 전투에서는 이길 수 있을 때 전투를 하여 한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은 링컨대통령도 두 가지를 겸비했다. 가깝게는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수상 처칠이 그렇다. 히틀러의 야욕을 일찌감치 알아채는 통찰력이 있었고, 전쟁을 준비한 행동파이다. 반면에 히틀러의 야욕을 평화롭게 저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유화책을 쓴 체임벌린은 통찰력과 행동력 모두 부족했다.

<돈키호테는 죽느냐 사느냐 고민없이 돌진한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일단 행동력을 갖고 있다.

한편, 통찰력과 행동력을 발휘하여 인류를 고통스럽게 한 경우도 있다. 히틀러가 그랬고, 무솔리니와 일본 군부 지도자가 그랬다. 그러나 도덕에 뿌리가 없는 통찰력은 결코 길게 갈 수 없도록 만든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곧 비극적인 끝을 보게 된다. 김정은은 핵실험을 하고, ICBM을 쏘아 올리면서 미국을 위협하는 시절에는 통찰력없이 행동만 있는 돈키호테와 같았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반인륜적이 범죄를 저지를 때는 오히려 히틀러에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트럼프를 2차대전의 전범에 비유할 수 없으며, 비유해서도 안된다. 그럼에도 반이민정책, 이란협정파기, 파리기후협약 탈퇴 등 일련의 정책을 보면 행동은 있으나 통찰력은 부족해 보였다.

<돈키호테형인 김정은과 트럼프, 이번 회담으로 통찰력까지 발휘되길 기대한다.>

서로의 이익을 챙겨주는 것이 협업의 첫걸음이다.

우리는 통찰력은 없되 행동력이 있었던 김정일과 한 시대를 같이 살았다. 그의 무모한 핵실험을 했을 뿐 ‘북한 인민’을 잘 살게 해주지 못했다. 그의 아들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을 통해 통찰력을 차츰 차츰 갖추고 있다. 핵을 포기해서 그의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면서 동시에 ‘북한 인민’을 좀더 잘살게 해보고자 한다. 그의 상대자 트럼프는 행동의 결과로 이익을 취하려고 하고 있다. 통찰력은 인문학적으로 담대하게 발휘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장삿속으로도 발휘된다. 협상은 나의 몫을 챙기는데 골몰하기 쉽다. 협업은 서로의 몫을 챙겨 줄 때 시작된다. 협상을 할 때 북미회담은 실패할 것이고 협업을 할 때 북미회담은 성공할 수 있다. 부디 두 사람이 상대 진정 원하는 것을 알아 채는 통찰력을 발휘하고, 행동 대 행동으로 나가는 실질적인 협업이 되길 응원하고 기대한다.

협업하는 인간, 강해지는 조직 콜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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