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한 해 동안 ‘일을 잘하는 법’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돌았다. 각계각층 전문가는 하나같이 입을 모아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어떻게 하면 커뮤니케이션을 잘할 것인가, 이를 통해 개인 및 조직의 목적과 목표를 달성하는데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인가로 연결시켰다. 그래서 더더욱 많이 ‘떠들어야’ 한다. 그런데, 다들 입을 닫고 있다. 침묵은 금이라고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침묵은 금이다?!


아니, 침묵은 독이다.

  • A. 지금은 회의 시간,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어디 좋은 아이디어 좀 없어요?”라는 팀장의 ‘질문 아닌 질문’이 던져졌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그러자 팀장부터 아이디어를 꺼내기 시작한다. 그렇게 모든 이들의 발언권, 아니 발언하고 싶은 마음은 쥐구멍을 찾아 하나 둘 씩 사라진다.

  • B. 비정기적으로 열린 회의, 서열에 관계없이 앞다투어 말을 띤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가 서로의 말을 끊고 자신의 주장을 하기에 바쁘다. 그 속에서 한 사람이 듣고만 있다. 이내 그는 모두를 조용히 하게 하고, 나왔던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요약 정리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인다. 그럼에도 결론은 나지 않는다.  
다소 극단적인 예시일 수 있지만,
A와 B를 비교할 때,
무엇이 보다 '생산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A가 ‘기대하는 일의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는 조건이 붙는다면, A가 더 좋은 효과를 가진다. 누가 됐든(팀장이) 문제 해결의 적절한 단초를 제공하고, 나머지가 이를 일사불란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어쨌든 모로 가도 서울에 갔으니, 그걸로 다행이다. 그런데, A속 팀장은 과연 좋은 솔루션을 계속해서 무한대로 내보낼 수 있을까.

그에 반해 B는 서로가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누군가 나서서 정리는 하지만, 이야기의 정리는 ‘공감 없이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몇 번의 경합이 이루어져야만 제대로 된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물론, 기대하는 좋은 결과가 뒷받침된다면 좋지만, 그럴 가능성에 기대기보다는 첫술에 배부르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점차 ‘효율성’을 높여가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을 대원칙으로 삼고 정진한다.

팀장, 구성원 입장에서
A와 B를 비교할 때,
무엇이 더 큰 성숙을 기대할 수 있는가?

A의 상황 속 팀원은 일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팀장이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는 것에 안심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불만을 갖기도 할 것이다. 어쨌든 관련한 경험이 많이 쌓인 이로부터 괜찮은 경험을 하는 경로와 방법을 전수받는 것에는 좋지만, 빠르게 일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 일에 대한 생각의 숙련도를 갖기에는 일부 한계가 있을 수 있다.

B는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있는 열린 분위기의 문화를 갖고 있다고 추정된다. 그래서, 아무 말만 하는 것만이 아니라면, 직급에 관계없이 어떤 이야기든지 남을 설득할 수 있고, 괜찮은 안건(솔루션)이라면 비즈니스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그에 따른 책임의 경계가 불분명하거나, 뜻하지 않게 직위를 넘어서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A와 B를 비교할 때,
무엇이 더 일을 '잘 또는 제대로'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까? 

A는 팀장을 믿고 가면, 일이 잘 될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 게다가 구성원의 입장에서 과도한 책임을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 상호 간의 유기적인 시스템을 통한 협력과 협업 체계가 고객을 향하고 있다면, 이를 쉽게 일의 결과로써 확인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잘 또는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B는 하는 과정은 다소 아비규환에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다량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상호 간의 이해를 바탕으로 다차원적 신뢰가 쌓이는 구조 속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때, 명확한 비즈니스 방향성을 바탕으로, 일의 최종 결과에 대해 조급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또한 점차 나아질 것에 대한 기대감을 잃지만 않다면, 희망적일 수 있다.

 

 

답은 사람마다, 그때마다, 기분 따라 전혀 다르게 나올 수 있다. 단지, 어떤 류의 커뮤니케이션인가에 따라, 좋은 결과인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그 과정 상의 절차에 대해 모두가 동의할 수 있고, 만족할 만한 과정인지를 살펴본다면, 답은 뻔히 정해져 있다. A에 비해 B가 보다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를 통해 ① 망해도 흥해도 모두가 다 같이 함께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수 있다. 모두가 한 배를 타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또한, ②개인에게도 성장할 수 있는 괜찮은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책임을 나눌 수 있으니, 실력 발휘할 기회를 의욕적으로 쟁취할 수 있는 환경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③ 다량의 커뮤니케이션이 상호 간의 이해도를 높여 신뢰를 가질 수 있게 한다. 계속된 구성원 간의 ‘말과 뜻의 부딪힘’이 결국 조직을 하나로 만드는 긍정적 시너지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네 직장 속 실제 모습은 위와 같이 극단적이지 않다. A와 B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그러다가 A와 B 중에 한쪽으로 기울어지게 되어있다.

①리더가 누구이고, ②구성원에게 얼마나 권한을 이양 및 기회를 주는가에 따라, ③그동안의 업무 처리 방식과 과정이 얼마나 문화로 고착화되었는가에 따라, ④해당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좋은 결과를 이끌어냈는가에 따라, ⑤구성원이 어떤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일을 처리하는 것을 선호하는가에 따라(또는, 동종 업계를 포함한 관련 시장 내의 일하는 문화까지) 다양한 모습을 띌 것이다. 같은 조직이라도 팀마다 약간씩 그 분위기가 다르듯이 말이다.

그런데, 이 속에서 개인은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 것인가 고민이 될 수 밖에 없다. 본연의 캐릭터가 모두가 쉽게 알아볼 정도로 확실하다면 모르지만, 그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면 그야 말로 난감하고 낭패다. 만약, 계속해서 입 닫고, 열심히 받아 적어야만 하는 운명인가. 그렇다면, 스스로 성장을 제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말을 많이 하든 하지 않든, 아니면 적당히 하든, 답은 정해져 있다. 말을 하지 않으면 나만 손해다. 말을 해야 나도 동료 선후배도 가진 생각을 서로 나눌 수 있다. 그것이 거수와 같은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은 세 살 버릇 여든 가는 중요한 직장 속 습관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잘 길들여야 한다. 그로 인해, 일을 잘하는 척도, 실제 일을 잘할 수도 있다.

 

일을 잘하려면
말을 많이 해야 한다.


말을 통해서만 일을 할 수 있다.

“말을 많이 하는 것이 다소 일을 잘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그리고, “말을 많이 하는 것이 말을 잘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그런데, 말을 하지 않으면, 내가 제대로 잘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중간 과정은 공유하지 않고 (이미 만들어진) 결과만을 던지는데, 과연 질문의 좋은 답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중요한 ‘중간 단계’를 생략한 채, 빠르게 답을 찾기 위한 “이거 맞죠?”를 연발하고 있다. 그렇게 시간만 자체 된다.

여기서의 말은 그냥 ‘말(대화 속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메시지 그 자체다. 그 메시지는 의도가 담겨 있다. 내가 가진 생각을 확인하는 것도, 이에 대해 상대방의 동의를 얻는 것도, 어떤 다른 면이 있는지 발견하기 위한 단초로도 작용한다. 그만큼 정리된 범주 내의 상세하고 빠짐없는 긴밀하고도 격이 없는 대화는 공동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끼리는 필수이다. 왜 해야 하는지(Why), 무엇 때문에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What), 할 때는 어떻게 해야 보다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는지(How)를 말(메시지)로 밖에는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화의 과정’을 ①목적과 목표를 설정하는데, ②목표를 확실히 정하는데, ③정한 목표와 관련한 세부 목표를 정하고 관리하는데, ④세부목표 달성을 확인할 수 있는 KPI를 정하는데, ⑤KPI를 위한 적절한 계획을 수립하고 운영하는데, ⑥계획 실행 및 운영 과정상 닥칠 수 있는 변수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⑦최종적으로 일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모든 것이 과정(단계)의 연속이고, 이들의 합이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단순히 ‘말을 많이’ 하라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말을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언제 필요 여부를 판단하고 적당한 말을 뱉을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과연 ‘뇌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아니다. 가끔은 우리가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과 행동이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시그널)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마치 작용과 반작용의 관계 속에서 나도 모르게 ‘옳은 소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옳은 말이라고 생각하면, ⓑ굳이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일을 제대로 하고 싶으면, ⓓ이 상황에서 말을 해야만 하는 타이밍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고 싶다면, ⓕ함께 일하는 사람의 생각을 알고 싶다면,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확실히 정리하고자 한다면, ⓗ그와 친해지고 신뢰를 쌓고 싶다면, ⓘ자신의 전문성을 뽐내고 싶다면… 그때마다 말을 던져야 한다. 제대로 말이다. 대화의 상대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말이다.

커뮤니케이션은 그때마다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모두 실전이다. 이해를 구하는 것도, 이를 통해 공감대를 얻고, 적절한 수준의 신뢰를 구축하는 것도, 이를 통해 제대로 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도 평소에 얼마나 ‘의식하고 말(메시지)에 정성을 기울여 전달하는가’에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직장 내에서는 ‘과묵보다는 수다스러워’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침묵은 곧 암묵적 동의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한 피해까지도 짊어지겠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때로는 가장 위험한 것이 모두를 위한 침묵일 수 있다.

 

 

이직스쿨 김영학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