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재산(Intellectual Property)은 최근에 들어서 새롭게 등장한 개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인류 문명의 발달 이래로 쭉 존재해 왔다. 많은 자료들은 인류 지식재산권의 기원을 이탈리아 발명가에게 세계 최초의 특허권을 수여한 1421년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전 항소심 법관 로빈 제이콥(Robin Jacob)에 따르면, 인류 지식재산 제도의 역사는 무려 기원전 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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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지식재산 제도의 기원 – 기원전 6세기

인류의 지식재산권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대략 기원전 6세기 고대 그리스의 Sybaris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당시 제빵사들이 레시피를 발명할 수 있도록 1년 동안 독점권을 부여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인류가 빵을 즐겨 먹기 시작하면서 지식재산의 개념이 생겨나고 점차 이를 중요하게 여겼던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비록 그 당시 독점권이라는 것이 현대사회에서 보장되는 수준의 독점적 권리는 아니었을 뿐더러 고대 그리스인들은 여전히 그들의 발명품을 신으로부터 받은 선물로 여겼지만, 새로운 지식재산의 발명이라는 과정 속에서 인간이 기여하는 부분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었다.

 

 

지식재산 제도의 암흑기와 최초의 특허

하지만 그 이후로 지식재산 제도가 쭉 발전을 해 온 것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새롭게 등장한 지식재산의 개념은 로마 제국의 부상과 함께 오랫동안 그 발전을 멈추었다. 종교가 사람들의 이념을 지배하였고, 개개인의 창의성에 대한 개인주의적 관점은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서기 약 480년경, Zeno 황제는 예술과 농산물에 대한 개인의 독점권을 완전히 철폐했으며, 교회는 제국 전체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권을 얻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세기를 거치면서 인본주의가 다시 나타나면서 사회에 대한 종교적 영향력은 약해져 갔다. 르네상스 시기에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나면서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발전에 대한 인류의 인식은 종교적인 교리를 능가하기 시작했다. 혁명적인 사고방식의 유입과 함께 과학 및 공학 분야의 급진적인 발전이 일어났고 이러한 과학적 발견과 혁신을 촉진할 수 있는 더 큰 유인책이 필요했다.

1421년, 이탈리아 발명가에게 독점적인 법적 권리를 부여한 최초의 근대 특허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 특허는 우리의 현재 특허권과 그 보호 범위가 상당히 유사한 최초의 특허로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예술 작품에 대한 지식재산권의 인정은 종교개혁이 일어난 훨씬 후에야 법적인 보호를 받기 시작했다.

 

17세기 유럽과 근대 지식재산법 제정

17세기 중세 유럽 시기가 되어서야 중요하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지식재산 관련 법률들이 제정되기 시작한다. 이들 중 첫 번째는 독점법(Statute of Monopolies)으로 이 영국법은 1623년에 제정되었는데 당시 모든 주요 산업은 길드(중세 유럽의 도시에서 발달된, 상인·수공업자의 특권적 동업자 조합으로, 11세기에 상업 길드가 성립하고, 12세기에 수공업자 길드가 생겨 도시의 실권을 쥐었으나, 근대 산업의 성립과 함께 쇠퇴하였음)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다. 각 길드는 상당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부가 어떤 상품과 원료를 수입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생산되고 판매될 것인지를 지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길드는 새로운 혁신을 시장에 가져올 책임이 있었고 그들이 직접 만들지 않은 발명품에 대한 소유권과 완전한 통제권까지 부여 받았다. 그러나 이후 독점법이 개정되면서 원작자 내지 원발명자가 소유권을 가질 수 있도록 되었다. 정부가 승인해오던 길드 형태의 독점권은 더 이상 허용되지 않았고 발명자에게 14년의 독점적인 사용 기간을 허락하게 된다.

또 다른 중요한 지식재산법 중 하나는 1710년에 Anne 법률(Statute of Anne)과 함께 제정된 것으로, 14년의 지식재산에 대한 보호기간을 부여하고, 이후 갱신하여 14년의 추가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었다. 이 법률은 주로 예술작품의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되었으며 많은 작가들이 새로운 문학 및 미술작품을 만들고 유통할 수 있도록 촉진했다.

 

 

 

미국 지식재산 제도의 탄생 및 현대 지식재산 제도의 기틀 마련

18세기 말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직후, 델라웨어주를 제외한 13개 식민지 대부분은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한 독자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각 주(state)가 독자적인 지식재산 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운영 상 문제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고, 이는 결국 각 주의 법률보다 우선하는 연방 법률의 제정으로 이어졌다.

그 후 약 100여 년이 흐른 1883년에 이르러서야 파리 협약(Paris Convention)이 제정되게 된다. 지식재산과 관련한 최초의 국제적 조약이었다. 파리 협약에 따라 전 세계의 모든 발명자들은 자신의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본인의 발명이 사용되더라도 이를 보호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1886년에는 여러 작가와 미술가들이 스위스 베른에 모이게 되는데, 여기서 노래와 오페라 등의 음악, 그림 및 조각품 등의 미술품 등 모든 형태의 예술적 표현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베른 협약(Berne Convention)이 탄생하게 된다.

 

 

 

 

그로부터 5년 뒤인 1891년, 스페인 마드리드 협정(Madrid Agreement)이 체결되면서 상표권에 대한 보호 역시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인정되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그리고 이 무렵, 파리 협약과 베른 협약에 의해 설립된 사무소들을 하나로 통합하여 오늘날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의 전신인 United International Bureaux for the Protection of Intellectual Property가 설립된다.

그리하여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들은 고유한 지식재산 제도와 이를 관장하는 특허상표청, 저작권 사무소 등을 두고 있는 한편, 국제지식재산법은 UN의 기관인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의 통제를 받게 되었다.

 

 

성기원 변호사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