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어떤 힘을 가지고 있을까? 손가락 하나만으로 신선식품부터 가전제품까지 모든 게 문 앞에 배달되는 시대, 사람들은 왜 추운 겨울 옷깃을 여미며 문밖을 나설까.
 
모바일 앱이 브랜드의 필수 과제가 되면서 기업들은 온라인으로 서둘러 옮겨가는 양상을 보였다. 특히나 2020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오프라인 매장을 고수하던 많은 브랜드들도 온라인 전환을 꾀했다.
 
이제 팬데믹의 위세도 한풀 꺾이고, 엔데믹으로의 전환이 가까워지면서 상황은 다시 달라졌다. 하지만 비단 엔데믹으로의 전환 때문만은 아니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단순히 광고를 통해 노출이 많이 되는 브랜드를 선호하지 않고, 매력적인 브랜드를 찾아 움직인다. 어떤 브랜드이든 하루아침에 ‘핫’해질 수 있다. 이제 중요한 건 브랜딩이며, 기업들은 소비자에게 경험적 가치를 심어주기 위한 오프라인 공간을 브랜딩의 도구로 삼고 있다. 영리한 마케터들은 온-오프라인 연계를 통해 오프라인의 고객들을 온라인으로 끌어들인다.
 
최근 많은 기업들이 오프라인 실험 무대로 서울 성수동을 선택하고 있다. 오래된 수제화, 피혁 상점과 힙한 감성의 카페가 뒤섞인 거리. 유난스럽게 유행을 내세우기보다 오래된 것은 오래된 대로, 새로운 것은 새로운 대로 제 갈 길을 간다. 이런 성수동의 이질적인 조화가 MZ세대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MZ의 발끝이 향하는 곳에는 어떤 공간이 있을까?
 
 
 
 

 
 
 
 

길거리 자동차 문화 ‘피치스’, 성수동 핫플로 거듭나다

 
 
 
 
‘플레이보이’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한 피치스 도원 전경
 
 
 
 
 
피치스(Peaches. One Universe)는 2018년 LA와 서울을 기반으로 설립된 자동차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다. 스트릿 카 컬쳐를 패션에 접목하여 다양한 굿즈를 출시하고 있으며, 여러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자동차 문화를 주도하고 있다.
 
피치스 도원은 2021년 4월 오픈한 피치스의 첫 오프라인 플래그쉽 스토어로, 피치스의 전시 및 상품 판매 공간인 동시에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성수동의 핫 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 전시·판매 공간 외에도 자동차 랩핑 등 스타일링이 진행되는 ‘피치스 개러지’가 있으며, 수제 햄버거 다운타우너, 노티드 도넛 등 대중적으로 인기 많은 푸드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
 
 
 

1.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공간화

 
 
피치스 도원에 처음 방문해 느낀 감정은 ‘자유분방하다’였다. ‘자유분방하다’의 사전적 정의는 ‘격식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행동이 자유롭다’인데, 피치스 도원은 스트릿 카 컬쳐의 자유로운 정체성을 그대로 공간화한 곳이다.
 
피치스가 ‘도원’이라는 오프라인 공간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브랜드 메시지는 꽤나 명확하다. 기존의 질서를 부수고 새로운 방식의 언어로 자동차, 그리고 자동차 문화를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피치스 도원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절반이 잘려 땅속에 박힌 듯한 모습으로 전시되어 있는 쌍용 체어맨, 일명 ‘회장님 차’이다. 이 차는 피치스와 아모레퍼시픽 뷰티 브랜드 ‘레어카인드’의 컬래버레이션 캠페인 영상에 등장했던 차다.
 
 
 
 
피치스 도원 정원에 전시되어 있는 쌍용 체어맨.
 
 
 
 
캠페인 영상에서 ‘PEACHES UNIVERSE’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은 몇 무리는 벤츠 로고를 달고 있는 체어맨에 ‘FAKE’라는 글자를 쓰곤 폐건물 꼭대기에서 차를 밀어 버린다. 그리고 야구 배트와 망치로 사정없이 차를 부수는데, 이는 ‘Thou shalt not fake.(속이지 말라)’라는 메시지와 함께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처참히 부수어진 차를 폐차하지 않고 도원의 입구에 전시해놓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른 스트릿 카 컬쳐는 ‘가짜’이며, 피치스만이 ‘진짜’라는 호기로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자동차 문화를 통합할 수 있는 브랜드로 만든 게 피치스다. 피치스의 풀 네임인 ‘피치스 원 유니버스(Peaches One Universe)’에서 느낄 수 있듯,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자 하는 브랜드 메시지를 공간을 통해 오롯이 ‘경험’시킨다.
 
 
 
 
Peaches. x RAREKIND 캠페인 영상 캡처. 출처 : 피치스 유튜브 채널
 
 
 
 
도원의 메인 공간이라 할 수 있는 핑크색 컨테이너 건물로 들어서면, 구획이 나뉘어 있지 않은 자유로운 동선의 전시, 상품 판매 공간이 나타난다. 꽤 넓은 공간의 중앙에는 역시나 자동차가 놓여있고, 자동차 뒤로 한쪽 벽면을 전부 차지한 대형 LED 전광판에서 피치스의 캠페인 영상이 재생된다.
 
물론 피치스 도원 내부에는 다운타우너와 노티스 도넛과 같은 유명 F&B 매장이 있지만, 넓은 메인 공간에 편히 앉아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테이블이나 의자는 많지 않다. 접객을 위한 서비스를 극대화한 일반적인 구조보다는, 자동차 전시라는 메인 콘셉트를 살리고 식음료 매장을 서브로 곁들인 느낌이다. 도원은 자동차와 관련한 다양한 오프라인 경험을 제공하여 피치스라는 브랜드에 긍정적인 가치를 심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자동차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대중적인 수단으로 F&B 매장이 필요한 것이기에 이들 매장은 주인공으로 부각되지 않는다. 다운타우너 매장은 언뜻 보면 지나칠 수 있는 메인 공간 뒤편에 숨어있다.
 
공간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메인 스페이스의 한 가운데를 자동차로 채우는 무모함. 그야말로 피치스의 정체성을 단번에 표현하는 오프라인 언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치 뉴욕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슈프림’이 매장에 의류 전시 공간보다 더 큰 스케이트 보드장을 만든 것과 유사한 전략이다. 매장에 스케이트보드를 사랑하는 팬들이 모이면서 슈프림이 팬덤 문화를 공유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났듯이, 피치스는 자동차 문화 팬덤을 위한 커뮤니티를 꿈꾼다. 도원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 피치스만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이곳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고유한 경험을 대중에게 제공하는 미디어나 마찬가지다.
 
 
 
 
 
중앙에 자동차가 전시되어 있는 피치스 도원의 내부

 

캠페인 영상이 재생되고 있는 대형 LED 전광판

 

 

2. 오프라인 공간 활용의 극대화, 컬래버레이션

 
 
피치스 도원은 또한 컬래버레이션 마케팅 성지로 유명하다. LG그램, 코카콜라, 플레이보이 등 유명 브랜드는 물론 AOMG, NCT 127 등 아티스트와도 협업을 진행했다. 한국타이어나 CJ제일제당과 같은 보수적인 이미지의 브랜드도 피치스 도원과의 협업을 통해 젊고 힙한 이미지를 얻어갔다. 기업 입장에선 피치스가 타깃하고 있는 MZ세대에 자사 브랜드를 홍보하여 피치스의 타깃을 함께 가져갈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피치스 도원에 대형 기업들의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피치스 도원은 컬래버레이션에 진심이다. 마치 컬래버를 위해 태어난 공간처럼, 협업 기업이 바뀔 때마다 공간 전체의 콘셉트가 카멜레온처럼 바뀐다. 도원 입구에 놓인 ‘회장님 차’의 랩핑도 협업 기업의 특색에 맞추어 계속해서 변한다. 자동차뿐 아니라 컨테이너 건물 벽면의 그라피티도 브랜드 이름이나 로고를 그려 넣는다. 실내 공간은 컬래버 기업의 콘셉트에 맞추어 굿즈를 전시, 판매하고 게임과 같은 다양한 체험을 제공하는 팝업 스토어로 끊임없이 변화한다.
 
 
 
 
플레이보이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한 피치스 도원 내부
 
 
 
플레이보이 컬래버레이션 굿즈와 플레이보이 로고로 랩핑된 차

 

피치스 마스코트 ‘바토’ 캐릭터도 플레이보이와의 협업으로 바니걸 의상을 입고 있다.
 
 
 
 
피치스 도원이 기업 컬래버에 이렇게 많은 공을 들이는 이유는 뭘까? 자동차가 그다지 대중적인 문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도원은 수많은 컬래버마다 메인 컬러와 콘셉트를 바꾸면서도 코어가 되는 피치스의 정체성, 즉 자동차는 그대로 가져간다. 피치스에 대해 잘 모르고, 좋아하는 브랜드의 체험 이벤트를 위해 방문한 고객들은 ‘여기 웬 자동차가 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피치스가 수많은 컬래버를 통해 노린 것은 그 지점이다. 마이너한 자동차 커뮤니티 외, 일반 대중에게 피치스를 알리기 위해 오프라인 공간을 영리하게 활용했다. 컬래버레이션을 더 많이 진행하면 할수록 자신들이 표방하는 자동차 문화를 기반으로 대중과의 소통을 늘릴 수 있고, 브랜드 파워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도원을 방문해 좋아하는 브랜드의 굿즈를 구입하고, 흥미로운 이벤트에 참여하고 자동차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어 SNS에 올린 뒤 집에 가는 순간까지 ‘피치스가 뭐 하는 곳인지’ 잘 모르는 고객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피치스는 부러 노골적으로 브랜딩을 주입하지는 않는다. 자동차 문화에 관심 없는 대중들의 일상에 ‘자동차 인증샷’ 정도로 가볍게 스며들고 ‘자동차에 유난히 진심인 공간’이라는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정도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당신이 도원에 방문한 순간, 이미 자동차 문화는 마이너한 ‘그들만의 문화’가 아닌 대중적인 라이프스타일로 옮겨갔으니 말이다. 어쩌면 도원에서 고민하다가 사지 않고 내려놓은 굿즈가 눈에 아른거려 피치스 온라인 샵에 접속한 김에 ‘근데 대체 여긴 뭐 하는 곳이야?’ 하며 피치스를 (오가닉하게!) 검색해볼지도 모를 일이다.
 
 
 
 
 
피치스 도원 내부 전시 자동차
 
 

 


 
 
 
 
오프라인 공간이 주는 경험적 가치의 중요성이 다시금 부각되고 있는 요즘. 피치스 도원은 오프라인의 메리트를 십분 활용해 ‘힙의 성지’ 성수동에서도 눈에 띄는 존재감으로 젊은 세대의 발길을 묶어놓고 있다.
 
플래그십 스토어를 통한 오프라인 마케팅을 고민하고 있다면, 피치스 도원의 사례에 힌트를 얻어가도 좋겠다. 핵심 타깃의 라이프스타일에 주목하여 이들을 커뮤니티화하기 위한 다양한 콘텐츠를 오프라인 공간에 실현하는 것, 피치스의 전략을 눈여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