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전문 리서치 스타트업 ‘피넥터’ 팀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이번 포스팅은 블록체인 기술의 적용 단계에서 발생하는 딜레마에 대한 내용이다. 먼저 ‘블록체인 딜레마 (Blockchain Dilemma)’를 ‘특정 문제를 블록체인 기술로 해결하고자 할 때, 새로운 문제가 파생되거나 근본적인 결함으로 애초 적용의 목적과 의미가 희석되거나 아예 필요 없어지는 경우’라고 정의하겠다. 이 글은 공개형 블록체인 (Public blockchains)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으며, 제한형 블록체인 (Private blockchains)에 해당되지 않을 수 있다.

 

공개형 블록체인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으로 대표되는 공개형 블록체인은 말 그대로 인터넷만 있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개’된 네트워크 기반의 블록체인이다. 특정 관리자가 네트워크 참여를 허가하지 않기 때문에 무허가형 블록체인 (Permissionless blockchain)이라고도 불린다. 공개형 블록체인의 개념과 철학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기술 적용의 수단과 목적으로 나누어 봤을 때, 공개성(openness), 검열 저항성(censorship-resistance), 탈중앙성(decentralization)의 수단을 통해 개인의 자주권(Individual sovereignty)의 목적을 달성한다고 볼 수 있다.

블록체인에 관심을 가진다면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기존의 중개자 또는 제3기관을 없애겠다.”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이 말은 곧 “블록체인 기반의 인센티브 구조를 통해 기존의 중앙화 된 업무를 분산된 개인들에게 전가하여 탈중앙화/탈중개화한다.”라는 뜻이다. 탈중개화를 통해 중개/검증 업무가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대로 존재한다. 다수의 개인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것뿐이다. 즉 단일의 개체가 권한(control)을 가지고 중개/검증을 하느냐, 다수의 개체가 합의(consensus)를 통해 중개/검증을 하느냐의 차이다.

그렇다면 왜 기존의 ‘단일-권한 기반’ 중앙 시스템을 블록체인을 통한 ‘다수-합의기반’ 탈중앙 시스템으로 바꾸려는 것일까? 여러 주장을 짚어보자.

 

효율성

블록체인 적용의 이점에 대해 논할 때 자주 등장하는 것이 효율성과 비용절감이다. 블록체인을 통해 권한이나 신뢰를 가지고 중개하던 제삼자를 없애면, 표면적으론 그 중개자 또는 중개업무가 사라진 것이기 때문에 효율성이 증가하는 이점이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는 여러 결함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블록체인은 중개/검증의 업무 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신뢰받는 단일의 개체가 하던 업무를 다수가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합의를 도출하여 해결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이로서 블록체인을 적용할 때는 기존의 단일-권한 기반 시스템에는 없던 두 가지 요소인 인센티브 구조(incentive mechanism)와 합의 구조(consensus mechanism)가 필수적이다.

 

1. 인센티브 구조

기존의 중앙화 된 시스템에서 중개/검증의 업무에 대한 인센티브는 당연히 그 업무에 대한 대가 비용이다. 우버가 택시 공급자와 수요자의 매칭을 중개하고 수수료를 받는 것이 예다. 탈중앙화 된 시스템에선 중개자가 없으니 중개/검증의 업무를 분산된 환경에서 다수가 처리해야 하고, 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금전적 동기가 필요한데, 이를 인센티브 구조라고 칭한다.

 

2. 합의 구조

기존의 중앙화 된 시스템에선 제삼자가 권한 또는 신뢰를 가지고 대신 중개/검증 업무를 한다. 은행이 정부로부터 자금이체에 대한 권한(은행 라이선스)을 받아 자금이체를 중개하는 것, 택시 공급자와 수요자가 우버를 신뢰하고 매칭을 의존하는 것 등이 예다. 탈중앙화 된 시스템에선 권한 또는 신뢰를 받는 중개자가 없기 때문에, 다수가 중개/검증 업무의 정합성을 판단하기 위해 서로 동의해야 하며, 이를 합의 구조라고 한다.

새로 파생된 이 두 가지 요소 (인센티브 구조와 합의 구조)의 문제점은 사용자 경험에 있다. 현재 서비스 공급자와 소비자의 관계(1:n)에선 이해관계의 충돌 없이 소비자가 시장에서 판단하는 적절한 가격을 제시하고 사용한다. 하지만 탈중앙환경(n:n)에서는 서비스는 존재하지만 공급자가 없으니, 사용자 개인 간의 이해관계를 복잡한 인센티브 구조와 합의 구조로 풀어야 한다.

예측시장 (미래의 이벤트를 예측하고, 결과가 맞았을 경우 금전적 이득을 얻는 시장)을 예로 들어 보자. 중앙화된 시스템에서 예측시장을 운영할 경우, 예측시장에 참여할 사람들과 예측 결과를 입력하고, 예측한 참여자에게 비용을 지불할 관리자만 있으면 된다. 어거(Augur) 프로젝트처럼 예측시장을 탈중앙화할 경우, 누군가 권한/신뢰를 받아 단독으로 예측 결과를 입력하지 않으니, 다수의 사람들이 금전적 인센티브를 동기로 삼아 결과를 입력해야 하고, 이 결과가 정확하다는 사실은 합의를 통해 도출해야 한다. 악의를 가지고 일부러 잘못된 결과를 입력하는 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디스인센티브(disincentive) 구조도 따로 만들어야 하며, 이로서 더 많은 문제들이 파생된다.

다른 예로 우버를 탈중앙화 해보자. 현재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우버와 참여자 (자동차 소유자와 고객)만 있으면 된다. 만약 이 구조를 탈중앙화한다면, 자동차 소유자와 고객 간의 인센티브/합의 구조를 정교하게 디자인해야 한다. 악의적으로 더 긴 루트로 운전을 할 경우 또는 고객이 구토 등의 물리적인 피해를 입혔을 경우, 디스인센티브가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선 서비스 비용이 모두 pre-funding 방식 이어야 한다. ‘권한’을 가지고 멀리 돌아간 운전자의 루트를 판단해 비용을 돌려주거나, 물리적 피해에 대한 보상을 강제하는 등의 현재의 사용자 경험이 어려운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시스템 비효율성이다. 퍼포먼스 관점에서 다수-합의 기반의 탈중앙화 된 시스템은 중앙화 된 시스템보다 느리고 비효율적이다. 특정 정보를 얻거나 처리하기 위해 단일의 중개자에게 요청하는 것이 당연히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모든 참여자에게 정보의 정합성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합의 방식보다 빠르다. 즉 모든 참여자의 합의를 도출해야 하는 블록체인 기반의 시스템에서 정보의 검증은 가장 느린 노드의 속도에 맞출 수밖에 없는 하양 평준식이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다.

 

비용절감

블록체인을 이용해 중개자 또는 중개업무를 없애면, 중개업무의 대가로 청구되는 비용이 사라지기 때문에 비용절감의 이점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이 주장에도 역시 오류가 있다. 기존의 중앙집중형 시스템에서 중개비용은 그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개체들이 독립적으로 지불하지만, 블록체인 기반 시스템에선 그 비용을 네트워크 참여자들이 상호적으로 지불 (mutualized cost)한다. 중앙집중형 비즈니스 모델이 탈중앙형 인센티브 구조로 형태만 바뀔 뿐, 비용은 그대로 존재한다. 여기서 바로 블록체인의 두 번째 딜레마인 탈중앙 응용프로그램 (Dapp)의 비즈니스 모델 문제가 생겨난다.

탈중앙 응용프로그램 (이하 Dapp)은 전 세계의 분포된 컴퓨팅 파워로 실행되어 관리자 없이도 구동되는 블록체인 기반의 프로그램으로서, 기본적으로 오픈소스 이어야 한다.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 일련의 컴퓨터 코드가 관리자 없이 자금을 다루기 때문에 코드를 공개하여 검증을 받지 않는 Dapp은 범용성을 지닐 수 없다. 문제는 이러한 법적 요소 없이 오픈소스화 된 코드만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구성해야 하기 때문에, Dapp을 개발한 사람 또는 기업이 특정 비즈니스 모델을 설정하여 비용을 받더라도, 제삼자가 기존의 오픈소스 코드를 복사해서 수수료를 없애고 재론칭할 수 있는 장벽이 낮다.

탈중앙 환경에서 Dapp을 만든 개발사가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 (예. 중개수수료)을 가져오게 되면, 아니 애초에 사업모델이 존재하게 되면, 그 Dapp은 시스템적으로는 중개업무가 없으니 탈중앙화 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비즈니스적으로는 중앙화를 그대로 유지한다. 즉 사용자 간의 관계에서 인센티브 구조로 이해관계를 푸는 탈중앙 시스템이 다시 중앙화 시스템으로 회귀한 것이다.

즉 Dapp을 구현할 때 효율성 또는 비용절감을 목적으로 블록체인을 통해 기존 시스템을 탈중개화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더 비효율적이고 사용자 경험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Dapp자체의 문제를 떠나서 암호화폐를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인 이상, 거래소에 계정을 만들고 은행계좌의 원화를 특정 암호화폐로 또는 비트코인을 구매하고 그 암호화폐로 교환한 후 지갑으로 이동시켜 사용하는 구조적인 UX 때문에 아무리 편하게 한 들 기존의 시스템보다 불편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현재 단일-권한 기반의 중앙화 된 시스템에서 다수-합의 기반의 탈중앙화 된 시스템으로 넘어갈 현실적인 이유가 효율성과 비용절감이 아니라면, 블록체인을 적용해야 하는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검열 저항성 (censorship-resistance)

개인적으로 Dapp의 사용가치는 검열 저항성, 즉 탈중앙화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거의 유일하다고 본다. 검열 저항성이란 제삼자가 임의로 검열하거나 중단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어거(Augur)와 같은 탈중앙 예측시장이 나온 이유도, 인트레이드(Intrade) 같은 중앙화 된 예측시장이 도박으로 분류되어 정부의 규제로 인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사용자 경험 측면에선 제약이 있을진 몰라도, 정부의 검열로부터 자유로운 시스템의 니즈가 분명히 존재한다.

비트코인 이전, 인터넷 화폐를 표방하는 다양한 시도(e-gold, Digicash 등)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던 이유는 바로 검열 저항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개형 블록체인 기반의 모든 응용프로그램은 검열 저항성으로 시작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검열 저항성에 대한 니즈가 있는 곳에 블록체인이 적용이 되어야 한다.

이제 여기서 세 번째 블록체인 딜레마가 생기는데, 바로 Dapp의 제도화이다. 많은 스타트업과 기업들이 ICO를 통해 또는 자체적으로 Dapp을 구현하고자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실적으로 효율성이나 비용,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만약 이러한 불편함을 넘어서는 꼭 필요한 서비스, 즉 검열 저항적 서비스를 사기업이 개발하게 되면, 당연히 개발의 주체인 사기업이 검열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검열 저항적 서비스를 합법적으로 개발하고 배포하여 수익을 창출할 수 있냐는 것이다. 당연히 불가능하다.

이번 글을 통해 공개형 블록체인 기반의 적용 또는 Dapp의 딜레마에 대해 알아보았다. 다음에는 제한형 블록체인의 한계와 딜레마에 대한 글을 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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