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코딩을 열심히 하던 어느 날, 나는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와 행복을 연결해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좀 생경한 경험이었다. 동료들에게 난 참 회사에 있는 것이 행복하다고 하니 자신들도 그렇다고 했다. 한 직원은 회사에 있는 것이 힐링 되는 느낌이라고까지 했다. 나는 이러한 생각을 페이스북에 올려보았다.

 

 

댓글들을 보니 회사에 다니는 것이 행복한 일이라는 것은 제정신에서는 있는 수 없는 생각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루었다. 그렇지. 우리나라에서는 회사에서 불행한 것이 디폴트였다. 

내가 회사에서 행복하다고 하면 주변에서 일이 부족하냐고, 일을 더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어보았다. 행복은 집에서나, 아니면 휴양지에서나 찾는 것이었다. 그래서 휴가 때 멋진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었다. 1년에 5일 정도 행복이 주어진 시간이었다.  

그런데 에어비앤비에서 일하면서는 오히려 휴가지에서 회사에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밥도 주고 더 쾌적하고 편안하고 보람도 느껴지는 그곳이, 매일 건강에 좋지 않은 밥도 사 먹어야 하고 관광지에서 사람에 치이는 것보다 더 좋게 느껴졌다. 그리고 직장에서의 행복에 대해 ‘실리콘밸리를 그리다’ 팀과 긴 시간 동안 토론한 끝에, 회사에서 불행한 것은 이상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행복의 피라미드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자 목적이다. 돈을 많이 모으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아기를 낳아 기르는 것도, 사회에 기여하는 것도, 권력을 잡는 것도 모두 행복하게 살기 위함이다.

그 ‘행복’이라는 것은 그냥 순간적으로 느끼는 기분일 뿐이지만, 인간은 불행하게 살 수 없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불행하게 사는 것은 너무나 불행하다. 사람은 행복하게 느끼지 않으면 고통스러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실리콘밸리 회사의 직원들은 일도 잘하면서 근무시간도 짧고 행복하고 연봉도 엄청 높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모든 실리콘밸리 사람들이 다 행복한 것은 아닐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행복한 사람들 중 하나이다. 그런데 왜 실리콘밸리의 직원들이 행복하게 느끼는지를 잘 살펴보면, 회사에서 행복한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회사에서 불행한 것이 이상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설은 어떤 욕구가 충족되어야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회사에 있는 시간이 행복하려면 다음의 욕구가 충족되면 된다:

 

1. 생리 욕구: 잘 먹고, 잘 쉰다. 

2. 안전 욕구: 협박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다.

3. 애정 소속 욕구: 팀원들과 원만한 관계를 갖는다.

4. 존경 욕구: 회사가 내 기여의 가치를 인정하고 기대한다.

5. 자아실현 욕구: 내 장점과 전문성을 살려 자발적으로 기여한다.

 

즉, 회사가 나를 일꾼이 아닌 프로페셔널 파트너로 대하면서, 회사의 미션에 대한 나의 기여를 함께 기뻐하면 된다.

어떻게 보면 상식적이고 쉬운 일이다. 집에 가서 잘 쉬고 회사에서 인정받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면 된다. 그렇지만 그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왜 회사에서 행복하기가 쉽지 않은지 알 수 있게 된다. 다음과 같이 욕구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에는 회사에 있는 것이 불행하게 된다:

 

1. 생리 욕구: 늘 피곤하고 힘들다.

2. 안전 욕구: 일 못하면 잘린다고 협박당하고, 폭언을 당한다.

3. 애정 소속 욕구: 팀원들 간의 관계가 경쟁 관계가 된다.

4. 존경 욕구: 다른 사람들과 늘 비교당하면서 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5. 자아실현 욕구: 내가 싫어하는 일을 해야만 한다.

 

즉, 회사가 나를 프로페셔널 파트너가 아닌 못 믿을 만한 일꾼으로 대하면서 다양한 협박을 통해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일을 시키면 된다. 사실 협박이나 강요를 당하면서 일하면 좋아하는 일도 하기 싫다.

 

 

내가 만든 레고가 다른 큰 레고의 부품에 불과하다면

 

사실 이러한 불행의 요소들을 살펴보니 좀 충격적이었다. 내가 본 우리나라 회사원들은 바쁘고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것이 회사원의 기본자세라도 되는 것처럼 늘 이야기했다. 1차 욕구부터 충족이 안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누군가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방식은 대부분 ‘협박’이다. 어려서부터도 공부 못하면 대학을 못 가고, 대학을 못 가면 인생의 낙오자가 된다는 무서운 협박을 듣고 공부를 해왔다. 이 공부를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이 지식을 활용해서 어떤 멋진 일들을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공채를 통해 사람을 뽑는 위계 조직에서는 팀원들 간의 경쟁이 회사 내 기본 원동력이다. 경쟁에서 뒤처지면 잘린다는 채찍을 통해, 또는 경쟁에서 승리하면 승진을 통해 연봉이 올라가고 더 큰 권력을 갖는다는 당근을 통해 직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한다. 이처럼 경쟁상대들과 함께하는 팀에서는 애정 소속 욕구가 생기기 쉽지 않다. 겉으로 친하게 지내도 중요한 순간에는 경쟁상대로서 내가 머리를 밟고 올라가거나, 내 머리를 밟고 올라갈 사람들이니까. 그리고 경쟁 관계에서는 내가 비교당하는 것이 당연하기에 존중의 욕구도 채우기 어렵다.

자아실현의 욕구는 더더욱 충족시키기 어렵다. 위계 조직에서는 윗사람이 시키는 일을 수행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도 남이 시켜서 하면 하기 싫다. 이것이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일도 직업이 되면 하기 싫어지는 이유이다. 

레고를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도 내일까지 이 모양대로 만들어오라고 하면 좋아할 리가 없다. 시간제한 없이 내 맘대로 레고를 만들어 내 이름을 걸고 전시한다면, 나는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시간 가는지 모르고 레고를 만들 것이다. 내가 만든 레고가 그냥 다른 큰 레고의 부품으로만 사용되고 데드라인까지 있다면, 창의력을 발휘할 필요도 없다면, 나는 레고가 싫어질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위계 조직이 창의력을 통한 혁신에 걸림돌이 되는 점이다.

 

 

창의적인 일은 커리어가 된다

 

위계 조직은 제조업을 위하여 만들어졌다. 이미 정해진 것을 조립하는 일은 원래 재미가 없고 창의력이 필요 없다. 그래서 괴로운 일을 열심히 하도록 많은 감시 장치와 보상 장치를 만들어야 했다. 

그렇지만 창의적인 일은 재미있다. 그리고 창의적인 일은 커리어가 될 수 있다. 공장에서 똑같은 것 만드는 것으로는 커리어를 삼을 수 없지만, 창의적인 디자이너, 엔지니어 등은 커리어를 쌓아 몸값을 높일 수 있다. 그래서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은 제약과 감시가 없는 편이 더 좋은 성과를 내는 데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창의적인 직원을 회사에 충성하도록 묶어두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박지성을 가졌던 아인트호번이 그를 가둬두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 박지성의 커리어에도 마이너스이고 그는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 아인트호번에서 잘리지 않기 위해서, 또는 연봉을 올리기 위해 골을 넣는 것은 별로 재미가 없는 일이다.

박지성이 아인트호번에서 열심히 뛴 것은, 그곳에서 뛰어나게 잘하면 다른 좋은 팀에 눈에 띄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고 몸값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박지성에게 동기부여를 한 곳은 아인트호번이 아니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급의 더 좋은 팀을 향한 커리어 목표였다. 그리고 더 높은 곳을 보고 있는 박지성은 아인트호번에게 최선을 다해서 많은 기여를 하였다. 

 

 

 

내 커리어를 위해 다니는 회사

 

이렇게 자아실현을 위해 커리어를 쌓는 것을 목표로 하면, 회사에서 일을 하지 말라고 해도 열심히 하게 된다. 일을 열심히 안 하는 것은 회사의 손해 보다 내 커리어에 손해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반대로 내가 편하게 휴가를 가질 수도 있다. 내 휴가를 위해 회사를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 커리어 발전을 잠시 멈추는 것이기에 온전히 내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리콘밸리 회사에서 직원을 뽑을 때는 어떤 커리어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 물어본다. 몇 년 후 회사를 떠날지 안 떠날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커리어에 비추어 여기에 있는 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고 싶을까를 묻고 싶은 것이다.

꿈이 월급을 받기 위해 회사에 충성하는 것이라면 그런 사람은 뽑을 이유가 없다. 일은 최소한으로 하고 잘리지 않기 위해 안정적인 선택만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꿈이 회사에서 많이 배우고 성장해서 몇 년 후에 다른 회사로 옮기는 것이라면, 자아실현을 위해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적극적으로 일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실리콘밸리 회사와 면접을 볼 때, 다른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라고 하지는 말자. 내가 가진 어떤 열정과 스킬을 통해 이 회사에 기여할 수 있을지를 먼저 이야기하고, 내 커리어 목표가 무엇인지, 이곳에서 나는 어떻게 성장하고 배우고 기여할 것인지 자세히 이야기하면 된다.

전문적인 수준을 갖춘 직원들을 전문가로 대하고 전문가로 활용하는 것은 기업 실적과 효율성을 위해서도, 개인 행복을 위해서도 훨씬 나은 일이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회사들이 필요에 의해서라도 이미 그렇게 변화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개개인이 행복하고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고 업무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사색할 수 있을 때,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닌 전문성을 갖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을 때, 회사에 +1이 아닌 x100의 기여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유호현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