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15년마다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사람 인체의 세포는 매일 100억 개가 죽고 다시 태어납니다. 세포는 수일에서 수개월이 지나면 노쇠 세포가 되고 세포분열을 통하여 새 세포를 생산합니다. 피부 세포는 2~4주, 혈액세포는 3~4개월이면 모든 세포가 죽고 새로운 세포가 됩니다. 심장, 뇌, 눈을 제외하면 사람의 모든 세포는 15년마다 전부 새롭게 바뀝니다. 그렇다면 15년 전의 나와 현재의 나는 같은 사람일까요? 

 

이 아이의 세포는 15년 뒤에는 거의 대부분 사라지고 새로운 세포가 나타납니다.

 

회사와 팀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대기업에서는 보통 3-4년에 한 번 꼴로 부서를 이동하게 됩니다. 스타트업은 1-2년 사이에도 멤버가 많이 변합니다. 스타트업 창업 후 2-3년이 지나면 초기 창업 멤버가 남아있는 경우는 적습니다. 하지만 구성원이 모두 바뀌어도 팀은 기존처럼 일을 하고, 회사는 같은 업을 지속적으로 해나갑니다. 

사람은 시간이 흘러 모든 세포가 바뀌어도 같은 사람입니다. 뇌가 있기 때문에 코어 성격은 거의 변하지 않고, 과거의 많은 것들이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다릅니다. 문화가 정착되지 않아 일하는 방식이 바뀌기도 하고, 제대로 인수인계가 되지 않아 과거의 히스토리를 아무도 모르게 되는 상황도 생깁니다.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기술 부채가 쌓이는 것만큼, 기획 운영 부채도 쌓이게 됩니다.

 

관리의 삼성을 있게 한 3가지 시스템.

흔히 관리의 삼성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인사에 대한 관리를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업무 프로세스가 잘 정리되어 있고, 모든 과정이 트래킹 됩니다. 새로운 사람들이 10년 전의 프로젝트를 재현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구성원이 모두 바뀌어도 같은 회사로 남을 수 있습니다. 제가 삼성을 떠나서도 도움이 되었던 관리의 삼성 경험은 크게 3 가지였습니다. (삼성의 모든 부서가 같진 않습니다. 제가 경험한 팀에 한정된 이야기입니다)

 

1. 완벽하게 정의된 워크 플로우

프로젝트를 여러 번 성공시킨 회사의 특권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제품을 개발할 때, 혹은 새로운 기능을 추가할 때 필요한 모든 일이 미리 정의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새로운 제품을 위한 워크 플로우 템플릿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시)
  • D-91 : 디자인 1차 시안
  • D-90 : 목업 외주 요청
  • D-89 : 목업 견적서 취합 및 가격 비교
  • D-89 : 제작 의뢰
  • D-86 : 목업 제작 중간 확인 
  • D-81 : 목업 수령
  • D-10 : 최종 QA

프로세스의 모든 일이 론칭일 기준으로 정의가 되어있습니다. 론칭일 91일 전에 디자인 1차 시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론칭일이 부러지거나(?), 남은 프로세스 중에 무언가는 하루를 꼭 줄여야 합니다. (그래서 야근이 많고, 그래서 협력업체 조기 납기 요청이 많아지…) 협력업체 의뢰 업무는 의뢰부터 수령까지, 세부 업무와 일정까지 정해져 있습니다. 협력업체로부터 납기가 예정대로 가능한지 확인하는 절차까지 있습니다. *PM은 워크 플로우에 따라서 각 액션 아이템 별 담당자를 지정하고, 매일 수행되어야 할 액션 아이템만 잘 관리하면 문제없이 프로젝트가 진행이 됩니다. 프로젝트 멤버들도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명확히 정의가 되어 있기 때문에, 더 효율적으로 일 할 수 있습니다.

*PM : Product Manager

 

2. 단계마다 점검 포인트

삼성은 제품 개발 프로세스를 *MVP부터 최종 제품까지 여러 단계로 분류합니다. 그리고 각 단계마다 정의된 체크리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가지 못합니다. 프로젝트를 더 진행할 가치가 없다면, 인적, 재정적 리소스를 더 투입하기 전에 드롭합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각 단계의 체크리스트를 통과하게 되면 성공적으로 제품 출시를 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제품 출시 이후에 예상과 다르게 실패했다면, 프로세스 상의 체크리스트가 재검토되고 고도화됩니다. 성공한 제품이 많아질수록, 실패한 제품이 많아질수록, 다음 제품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MVP : 최소 기능 제품(MVP, Minimum Viable Product)

체크리스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사업적 요소와 기술적 요소입니다. 사업적 요소는 간단하게 말하면 돈을 벌 수 있는가입니다. 제품 구상단계에서 최종 제품 단계로 가면 갈수록 제품 원가의 예측도가 훨씬 높아지게 됩니다. 시장조사와 영업을 진행하면서 판가에 대한 범위도 윤곽이 점점 잡힙니다. 즉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될수록 현실적인 BM인지 아닌지 더 잘 알 수 있게 됩니다. 만약 특정 단계에서 순수익이 생길 수 없는 구조라면, 다음 단계가 되기 전에 원가를 줄일 방법을 찾거나 가격을 올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제품 개발이 너무 많이 진행되어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에 제품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습니다.

기술적 요소는 간단히 말해 개발할만한 가치가 있는가입니다. (삼성은 기술적 도전이 없으면 제품 개발을 안 하기도 합니다) 회사 역량의 성장을 가져올 것인지, 다른 제품이 영향을 줄 수 있는 메타 기술인지가 각 단계마다 평가됩니다. 현실적으로 구현 가능한지에 대한 검토 또한 합니다. 이전 제품보다 기술 지표적 성장을 요구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임직원의, 팀의, 제품의, 회사의 성장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계속해서 완벽하게

 

3. 완벽한 트래킹 시스템

삼성의 생산 관리 시스템(MES)은 전 세계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다는 평을 받습니다. 스마트폰의 일련번호만 알면 모든 부품의 생산업체, 생산날짜, 생산조건까지 알 수 있습니다. 협력업체의 협력업체까지도 정보가 남아있어서 부품의 재료 레벨까지 알 수 있습니다. 고장 난 스마트폰이 많아질 경우, 어떤 부품 때문에 문제가 생겼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3월 14일에 납품된 3번 박스(Lot)의 카메라모듈이 사용된 스마트폰이 1%나 불량이다. 그 카메라모듈이 생산되었을 때, 공장의 습도가 기준 상한치보다 1% 낮았다.라는 결론까지 쉽게 나올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동일 조건으로 생산된 카메라모듈을 향후 제품에는 사용하지 않고 전량 폐기합니다. 또 카메라모듈 제조 환경의 습도 기준치를 보다 엄격하게 관리하게 기준이 변경됩니다.

제품을 출시한 뒤, 품질이 좋은 제조조건, 품질이 나쁜 제조조건을 모두 트래킹이 가능합니다. 한 프로젝트를 구성하는 세부 업무가 최종 결과에 어떻게 얼마나 영향 줄 수 있는지 확인이 가능합니다. 제조업이 아닌 IT업에서도 동일한 시스템이 구축이 가능합니다. 앞서 설명한 워크플로우 템플릿과 체크리스트입니다. 워크플로우에 업무 진행한 내용을 기록하고, 체크리스트에 확인사항이나 지표를 기입하면 됩니다. 업무의 성과가 좋은 경우, 나쁜 경우 모두 why에 대한 가설을 세우기 쉽게 됩니다. 

 

스타트업도 이런 시스템이 필수가 아닐까?

삼성은 위와 같은 업무시스템으로 지속적이고 건강하게 성장합니다. (물론 삼성이 하고 있는 것은 훨씬 더 많습니다) 팀원이 모두 바뀌어도 회사의 노하우는 계속 전수되고 고도화됩니다. 대부분의 회사와 서비스는 이렇지 못합니다. 심한 경우는 핵심인력이 빠지게 되면 서비스가 없어지기도 합니다. 히스토리가 제대로 남지 않아서 해봤던 일을 다시 해서 돈만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매번 같은 방식으로 일을 해서 같은 결과만 만들기도 합니다. 

지금 하는 업무가 다음 업무에 도움될 수 있도록 계속 기록을 남기는 것은 중요합니다.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면 회고하면서 워크플로우와 체크리스트를 고도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하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됩니다. 일을 하면 할수록 프로젝트 성공률이 계속 높아지게 됩니다. 팀 퍼포먼스를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게다가 팀 퍼포먼스가 성장하는 속도를 성장하게 하는 효과가 나옵니다. 지수적 성장입니다.

업무 시스템이 고도화되면, 팀원이 나가게 되었을 때 인수인계 코스트가 많이 절약됩니다. 또 새로운 팀원이 왔을 때에는 빠르게 온보딩이 가능합니다. 사람이 많아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닙니다. 사람이 적기 때문에 더 똑똑하게 일을 해야 합니다.

 

임현근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