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매우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이 진행되고 있어 모든 흐름을 다 쫓아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 공급하는 서비스와 혜택을 누릴 수 있어 좋지만, 기분이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다. 마치 어렸을 때 혼자서 챙겨 먹을 수 없던 나에게 엄마가 늘 밥을 차려 주신 것처럼, 어느 순간 급변하는 세상이 공급해주는 것을 받아만 먹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난 계속 소비자 입장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지금 이 순간에도 변하고 있는 세상에서 나만의 포지션을 잡고 템포를 맞춰 나란히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일주일에 적어도 한 두 번쯤은 자산 관리 어플을 사용한다. 은행, 카드, 보험, 증권, 부동산 등 나의 모든 자산의 변동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고 소비 패턴까지 파악할 수 있다. 사실 내가 2년 전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스타트업에서 만든 어플이지만 요긴하게 잘 사용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서비스 뒤에는 얼마나 치밀한 기획과 실행, 완벽에 가까운 솔루션과 상품 개발, 치열한 마케팅과 홍보가 있었을지를 생각해본다. 무엇보다 넘쳐나는 금융 데이터를 한 곳에 모아서 상품화하는 일련의 과정이 궁금하다.  

이처럼 가끔은 내가 사용하는 서비스 이면에 담긴 기술과 알고리즘을 이해하고 싶다. 남들이 불편해 하는 문제를 해결해주고 성공한 스타트업을 바라볼 때면 그들의 성공 비결이 궁금하다. 확실한 건 그들은 알고 나는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차이가 알고 보면 크다고 할 수 없는데 결과로 보이는 것은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직장인을 구분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스페셜리스트(Specialist)와 여러 분야에서 골고루 경험을 갖춘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로 나누는 것이다. 어느 산업, 어느 분야에 있느냐에 따라 스페셜리스트가 우대를 받기도 하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그런데 세상이 워낙 빠르게 변하다 보니, 급변하는 세상을 두루 읽고 해석할 줄만 알아도 전문성 있다는 소리를 듣는 세상이 되었다. 이 세상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가 결과적으로는 꽤 큰 차이를 불러오는 시대로 향하고 있다.

 

 

알아 들어야 대화가 가능한 시대

 

팀 미팅 상황을 예로 들어보자.

 

팀장: 오늘 미팅에서는 매년 지역 주민 대상으로 진행했던 그림 그리기 글짓기 행사가 올해 코로나 시국 때문에 정상 개최가 어려워 대체 방안을 논의하고자 합니다. 각자 아이디어 얘기해볼까요?

A과장: 기존 행사를 온라인으로 옮겨 진행해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홈페이지로 사전 신청을 받고, ZOOM 접속 링크를 제공해 실시간으로 각자 집에서 대회를 진행하는 거죠. 중간에 온라인 공연과 퀴즈 등 다양한 행사를 넣으면 호응도 좋을 거 같습니다.

팀장: 참여율을 높이는 게 관건일 거 같은데요?

A과장: 학교와 학원 중심으로 모집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청은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서 받고자 하는데 현재 홈페이지 UX/UI가 불편하게 되어 있어서, 이번 기회에 버전 2.0으로 업그레이드를 하려고 합니다. 기존처럼 참가 신청 페이지를 팝업으로 띄울지, 메인 화면에 바로가기 링크로 나타낼지는 AB 테스트 진행 후 확정하려고 합니다.

B대리: (UX/UI? AB 테스트? 나만 모르는 건가?)

C대리: 마침 다음 주에 식품 사업부에서 고객 대상 온라인 이벤트가 있는데, 그때 동일한 콘셉트로 AB 테스트 진행하고 그 결과를 어린이 행사에 적용해도 좋을 거 같아요.

B대리: (뭐지? C 대리도 알고 있었잖아?)

팀장: 그래, 그렇게 하는 걸로. B 대리는 다른 의견 없어요?

B대리: 예, 없습니다.

팀장: 자, 그럼 오늘 미팅은 여기까지 하죠.

 

회사에 있다 보면 이와 비슷한 상황이 자주 생긴다. 사실 B대리는 웹 담당자가 아니기 때문에 UX/UI나 AB테스트가 정확히 무엇인지 몰라도 당장 본인 업무엔 지장이 없다. 비록 팀 미팅 자리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신입사원 때라면 큰 문제가 없지만 본인 업무 이외에도 팀의 공통 업무까지 담당해야 하는 3, 4년 차 이후에도 계속된다면 본인도 팀도 난처한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생각보다 자주 발생한다. 앞의 상황에서는 B대리가 AB 테스트라는 개념을 알았다면 쉽게 넘어갔을 텐데 몰랐기 때문에 미팅 때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사실 AB 테스트 개념은 쉽다. A안(대개는 기존 안)과 B안(새롭게 도입하는 안) 두 가지를 준비해서 각각의 결과를 비교해보는 것이다. 팀 미팅에서 언급된 A안은 참기 신청 페이지를 팝업으로 띄우는 것이고, B안은 메인 화면에 바로가기로 포함하는 것이다. AB 테스트를 설정하면 100명의 사람이 들어왔을 때 50명은 A안을 보여주고, 나머지 50명은 B안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어느 안에 방문자들이 더 반응하는지를 보면서 최종안을 확정한다. 절대 어려운 콘셉트가 아니어서 다양한 곳에서 쓰인다. 하지만 모른다면? B대리처럼 미팅 때 한마디 하지 못하고 앉아 있다 끝난 후 검색하고 비로소 알게 된다. 이처럼 본인이 몸담고 있는 산업과 분야에서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최소한 ‘이것은 무엇이다’ 수준만 알아도 모르는 것보다 백 배 천 배 낫다.

 

 

AB테스트는 A안(기존 안)과 B안(도입 안) 두 가지를 준비해서 각각의 결과를 비교해보는 것이다.

 

 

현재 회사 직원들의 평균 나이가 서른이 조금 넘는다. 다른 회사에 비하면 어려도 한참 어리다. 그런데 내가 가장 놀랐던 것은 주말에 뭐하는지 물어보면 직원들 대부분이 하루는 놀고 하루는 공부한다고 대답이었다. 마케팅이든 데이터든 시장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현재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 굳이 공부하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느끼고 미리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놀라웠다.

 

 

한 마디라도 던질 수 있고 없고의 차이

 

B 대리가 미팅이 끝나고 나서 몰랐던 개념을 검색해서 알면 되는 거 아닐까?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은 타이밍. 회사 생활도 타이밍이다. 결정적일 때 한 마디를 던질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자신에 대한 인상이 달라지기도 하고, 직장 생활의 미래가 달라지기도 한다.

앞의 경우에서 팀장이 B대리에게 ‘B대리는 다른 의견 없나?’라고 물었을 때 어떤 의미였을까? 대개 둘 중 하나다. 하나는 B대리가 미팅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거나, 아니면 그냥 던져본 질문이거나. 후자라면 괜찮지만 만약 전자였다면 앞으로 팀장은 B대리를 어떻게 바라볼까?

 

 

고객 미팅에서도 아는 것이 힘이다

 

팀 미팅에서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가 팀 내 입지와 관련 있다면, 고객 미팅에서는 회사에서의 입지와 관련 있다. 팀 사람들은 표정 관리를 해주지만, 아쉬울 게 없는 고객은 감정을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 그래서 고객 미팅은 본인을 어필할 수도 있는 반면에 자기 무덤을 파는 장소가 될 수도 있다.

회사가 개발한 솔루션을 플랫폼 기업에 영업해야 하는 미팅 자리가 있었다. 사실 첫 미팅은 1년 전에 있었지만 고객사 사정으로 연기되었다 재개되는 미팅이었다.

 

고객사: 마크, 1년 전에 우려했던 부분들이 많이 보강되었네요. 그런데 사실은 저희가 가지고 있는 플랫폼이 A도 있지만 B도 있습니다. 그래서 B 플랫폼을 사용하는 고객들의 요구 사항도 감안을 해야 하는데요.

마크: 예, 1년 전에도 일부 장기 고객들이 여전히 B 플랫폼을 고수하고 있고, A 플랫폼으로 이전하는 것에 대해서 의지가 없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같은 경우로 이해하면 될지요?

고객사: 예, 맞습니다. 기억하시네요. 특히 xx, oo 같은 회사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들 기업들의 요구 사항은 일반적인 경우와는 달라서 맞춤형으로 서비스가 가능할지도 검토해주시기 바랍니다.

마크: 그 부분은 오늘 보여드린 자료에는 없으나 이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플랫폼은 다르지만 맞춤형으로 적용 가능하도록 이미 설계를 해뒀습니다.

고객사: 아, 그러면 감사하죠.

 

당연히 고객 미팅 후에는 미팅 노트를 정리해서 공유한다. 따라서 기록으로는 남는다. 하지만 기록한다고 해서 모두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모든 기록을 다 들여다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두 가지로 접근이 가능하다. 하나는 미팅 때마다 중요한 내용에 대해서는 미팅 노트와 더불어 후속 조치를 정리해 공유해야 한다. ‘자, 오늘 미팅에서 논의된 주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수준으로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 오늘 미팅에서는 주로 이런 내용으로 논의됐고, 추가적으로 우리가 취해야 하는 후속 조치는 다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수준으로 공유되어야 한다. 이렇게 후속 조치까지 완료되도록 하면 중요한 내용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인지할 뿐 아니라 급하게 미팅이 잡혀도 미리 준비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공부하는 것이다. 고객 미팅 후 새로운 내용이나 용어, 트렌드 등에 대해서 자료 검색 등을 통해 공부해야 한다. 내 경우도 고객과 첫 미팅 이후 일부 장기 고객들이 사용한다는 B 플랫폼에 대해서 고객사 사이트 등을 통해 공부했던 것이 계속해서 기억에 남는 데 도움되었다.

 

 

미래학자들은 조직에서 어려운 기술 용어나 콘셉트를 구성원들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 포지션을 유망 직종으로 언급한다.

 

 

어려운 용어를 쉽게 설명해주는 번역가가 필요한 시대

 

다른 나라 말을 모르는 사람에게 번역가나 통역가는 너무나도 대단한 사람이다. 언어로 단절된 두 쪽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기술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시대에는 또 다른 의미의 번역가가 필요하다. 바로 조직 내에서 어려운 기술 용어나 콘셉트를 구성원들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다. 실제로 미래학자들이 AI 시대, 빅데이터 시대에 유망한 직종으로 언급하는 역할이기도 하다.

‘아니 그런 일을 가지고 어떻게 직업이라고 할 수 있죠?’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조직 내에서는 필요한 포지션이다. 지인이 있는 회사의 예를 들어보자.

‘그룹’이라고 불릴 정도의 회사 중에서 아직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빅데이터 프로젝트’, ‘데이터 드리븐 의사결정’과 같은 콘셉트를 뒤늦게 도입하는 회사들이 많다. D 회사도 그중에 하나였다. 그룹이라 불릴 정도니 회사의 사업 포트폴리오는 다양했고 당연히 수많은 데이터들이 쌓이고 있었다. 어느 날 오너가 한 마디 했다.

 

“우리 회사는 데이터가 많은데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요즘 트렌드라고 하니 활용 방안을 검토하세요.”

 

그리고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룹 연구소에서 시장 조사를 시작했고 여기저기 컨설팅펌, 에이전시를 접촉했다. 나도 한 연구원과 통화할 기회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 그룹 내에는 누구도 오너에게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무엇인지, 빅데이터가 무엇인지, 지금 데이터가 넘쳐 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는 별로 없다는 것을 설명해줄 사람이 없었다. 그 사람은 꼭 빅데이터 전문가가 아니어도 좋다. 디지털 관련한 용어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시장 트렌드를 알고, 비슷한 규모의 회사들은 어떤 움직임이 있는지 정도만 알아도 D 회사는 프로젝트 초반 허둥지둥할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나는 그 연구원과 통화하고 나서 ‘아, 지금은 이 회사와 함께 할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오너의 말 한마디에 우왕좌왕하고, 내부에 컨설팅펌이나 에이전시와 의사소통할 수 있는 수준의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무턱대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가는 몇 번이나 판이 뒤집힐지 모른다. 성숙도가 너무 낮은 것이다.

나는 평소 후배들에게 뭐가 돼도 좋으니 디지털 관련한 공부를 하라고 한다. 그것이 SQL이나 Java와 같은 기술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AI나 빅데이터 관련 이론일 수도 있고, 아티클과 같이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것이어도 좋다. 왜냐하면 놀랍게도 모든 것이 각자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다 연결되어 있어서 하나를 공부하기 시작하면 결국에는 전체를 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일단 디지털에 발을 들이면 어지간한 글이나 대화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다음은? 앞에서 언급한 ‘번역가’를 필요로 하는 시기가 올 때 활약할 수도 있고, 그에 앞서 D 회사와 같은 곳에 있다면 회사에서 외부 컨설팅펌이나 에이전시와 일할 때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를 메워주는 서비스의 등장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어느 것부터 알아야 하는지도, 얼마나 깊이 알아야 하는지도 모르다 보니 아예 시작도 못하고 포기한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이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다양한 서비스가 등장했다.

뉴스레터 스타트업 뉴닉(NEW NEEK)도 그중에 하나이다. 뉴닉은 주 3회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메일로 전달해주는 뉴스레터이다. 특정 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회사 점심시간에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할 때 꼭 필요한 콘텐츠만을 담고 있다. 유행이 지났다고 생각했던 뉴스레터 형식임에도 40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을 통해 사람들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를 메워주는 콘텐츠에 얼마나 목말라하고 있는 지를 알 수 있다. 이처럼 개인이 자신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하나라도 더 알고자 노력하기도 하지만, 이를 사업화해서 서비스로 공급하는 스타트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겁먹지 않아도 좋다.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한 번의 노력이 필요하다. 궁금한 게 있다면 지금 검색창에 쳐보자. 나보다 먼저 고민하고 노력한 사람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정보를 발견할 것이다. 공부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동영상 검색을 해보자. 1시간이면 콘셉트를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는 자료들이 준비되어 있다. 이 모든 것들을 미안해하지 말고 내 것으로 흡수하자. 내가 알아듣는 만큼 내 영역도 넓어진다.

 

 

Mark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